'우리밀·보리 경쟁력 있다'
[부안생태기행] 1%도 안되는 우리밀 자급률

2000년도 미국산 수입밀과 4배 가량의 가격 차이를 보이던 국내산 밀값은 국제 곡물가격 상승으로 최근 1.5~2배 정도로 가격차가 좁혀졌다. 국제곡물가격의 상승은 사료용 곡물 상승을 불러와 작년 한해에만 일반 사료업체들은 여섯 차례에 걸쳐 사료 가격을 50% 이상 인상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지리멸렬하던 국내 밀과 보리재배 면적이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차츰 경쟁력을 더해가고 있는 국내산 밀과 보리 재배 현황과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1%도 안되는 우리밀 자급률

인구의 65%가 식량난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은 1960년대 말 한때 밀을 수출하기까지 하였다. 이는 키가 작아 쉽게 쓰러지지 않는 유전자를 지닌 밀 종자 때문이었다. 이 밀의 조상은 바로 우리의 앉은뱅이밀이었다. 키가 작다는 뜻으로 '앉은뱅이'라 이름붙은 이 밀은 우리나라 중, 남부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던 품종이었다.

일제는 한국의 농업에 관한 제반 사항을 조사하기 위해 1904~1905년에 한국토지농산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 때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작물의 재래종을 가져갔다. 이 때의 기록에 ‘까락이 있고 키가 작은 밀’이라고 표현한 앉은뱅이밀도 포함되어 있었다.

1945년 2차세계대전 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의 한 농업고문은 일본이 계통 선발하여 개량한 밀종자를 가져갔으며 미국에서 다수확 품종으로 개량되었다. 기존의 밀에 비해 40%  이상의 수확량 증가를 가져다 주었다. 가히 녹색혁명이라 할 만하다. 현재 미국 밀의 90% 이상이 앉은뱅이밀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며 세계 밀 재배면적의 1/4이 넘는다고 한다. 이 품종이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기아문제를 해결했고 이 밀품종을 개발한 보로그 박사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이토록 우수한 유전자원을 두고도 우리밀은 한 때 절멸로 갈 뻔하였다. 값싼 미국산 밀을 수입한 때문이었다. 관세율을 2%대로 낮추었다. 밀에 관한 한 우리는 일찌감치 미국과 자유무역(FTA) 계약을 체결한 셈이었다.

밀 생산량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해 1983년 정부가 우리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89년도 우리밀 생산량은 0%까지 도달해 우리밀은 절멸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되살아났지만 우리의 밀 자급률은 고작 0.1%에 그쳤으며 거의 전량을 미국에서 사다먹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곡물 수입의 30%에 해당하는 양이다. 하루 세끼 가운데 한 끼는 미국산 밀을 먹고 있는 것이다.

1990년 전국 밀 생산량이 889톤이던 것이 2000년에 1,026톤으로 큰 변화가 없었으나 국제 곡물가 상승에 힘입어 차츰 재배 면적이 늘기 시작하더니 2005년도에는 7,678톤으로 늘어났고 농업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밀 생산량은 2만8000톤으로 지난해보다 3.7배 정도 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국내의 연간 밀가루 평균 소비량 330만t의 0.84%로 1%에 육박하고 있다.

한때 절멸상태에 이르렀지만 다시 우리밀이 기사회생한 것은 우리 농민들 덕분이었다. 1989년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가 발족됐다. 초대 공동대표로 우리밀 살리기에 진력했던 양만규 전 회장에 따르면 경남 고성의 한 농가에서 가까스로 우리밀 종자를 구해 차츰 확산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정부는 2015년까지 우리밀 자급률을 15%까지 늘릴 계획을 세우고 각종 지원책을 펴고 있다. ha당 28만원의 지원금과 경관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1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일부 농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탄소 저감에 대한 보조금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축산농가 효자 사료용 청보리

1980년까지만 해도 보리는 쌀 다음의 주곡으로 재배면적이 90만 ha를 넘었지만 지금은 10만ha 정도이다. 가난의 상징처럼 돼 버린 보리의 재배면적이 줄어들자 보이지 않는 여러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한겨울 눈 속에서도 파릇파릇 자라는 보리의 대기 정화 및 산소 생성, 토양 유실의 방지 및 축산폐기물의 재활용 등에 의한 환경오염 방지 효과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국제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해 밀과 함께 보리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웰빙식품으로도 인기가 높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료값에 울상이던 축산농가들에게 더없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보리의 낟알과 잎·줄기를 동시에 수확해 발효시키는 청보리 사일리지는 조단백 10.5%와 가소화양분(TDN) 71.6%로 초지면적이 풍부한 외국에서 많이 이용하는 귀리나 알팔파보다도 10%정도 높다. 또한 알곡까지 이용하기 때문에 영양분이 풍부한 옥수수와도 비슷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옥수수 사일리지의 절반 수준이다.

또한 청보리를 재배해 소의 조사료로 먹이면 육질이 크게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료로 볏짚을 먹인 소에 비해 1등급 이상 출현율이 무려 76%나 향상 되고, 일당증체량도 5%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농촌진흥청 호남농업연구소는 총체사료용으로 2002년 ‘영양보리’를 육성한 데 이어 2006년에는 껄끄럽지 않고 줄기가 부드러워서 소가 먹기에 좋은 ‘유연보리’를 개발하는 등 청보리 전용품종 7종을 개발했다. 또한 2012년까지 양질의 다수성 청보리 품종 12개품종을 개발하고, 다수확 재배기술 개발에 이어 보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국립종자원은 청보리 보급종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주문생산공급제를 추진하는 등 종자 공급방식도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농민과 농촌주민은 일반 국민에게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제공한다. 특히 온산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는 가운데 들판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의 경관은 더할 수 없는 심미적 기능을 제공하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마저 확인케 해준다.

/허정균 huhjk@buan21.com

이 글은 '풀씨' 14집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