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때 동학농민군의 근거지였던 백산성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하였고 어떤 선택을 했으며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그것은 개인의 처지와 상황 그리고 생각과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거대한 회오리 속에서 일부는 비판적 시각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은 관망의 자세를 유지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동학농민군의 길을 선택하여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표출했다. 그들은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다. 1894년, 부안은 과연 어떤 상황이었을까? 부안이라는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농민군은 어떤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강봉희, 송원환, 김기병 등 1894년 무렵에 부안에서 살다가 동학농민군으로 죽어간 이들은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강봉희(姜鳳熙, 1864∼1894)

강봉희는 1862년 5월 4일 부안 동진면 안성리에서 아버지 강학수와 어머니 온양정씨 사이에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강봉희는 함안조씨와 결혼하여 아들 강대일과 강대옥을 낳았다. 그는 심신이 장대하고 강건하였으며 평소에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앞장서서 처리하였다고 한다. 또한 불의와는 타협을 거부하는 대쪽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주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강봉희는 1894년 이전에 동학에 입도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언제 어떻게 동학농민군에 가담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1894년 4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부안에 들어왔을 때 합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해 3월 전봉준이 손화중과 함께 무장에서 기포하여 백산에 총집결할 때 강봉희는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부안의 동학세력은 김낙철 접주의 휘하에 있었는데, 그는 전봉준의 봉기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낙철 접주는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전봉준의 농민군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전봉준은 백산에서 농민군 조직을 체계화하고 원평까지 진출하여 전주성 점령을 도모하지만 여의치 않아 다시 남하한다. 이때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은 부안지역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게 되고 이때 다수의 부안지역 동학농민군이 합류하게 되는데, 강봉희는 바로 무렵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농민군의 일원이 되어 혁명의 길을 함께 가다가 어느 순간 산화하여 역사의 일부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부안지역에서 진용을 정비한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은 이후 황토현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이어서 장성 황룡촌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양호초토사 홍계훈의 토벌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곧바로 전주성을 점령한다. 그러나 청과 일본 군대가 국내에 주둔하자 전봉준의 농민군은 외세를 몰아내고자 홍계훈과 전주화약(全州和約)을 맺고 전주성을 내어준 뒤 남하하게 된다.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전 지역을 순회하면서 자치 행정을 지도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강봉희가 전사했을 것으로 보이는 나주성 서성문의 모습

동학농민군 강봉희의 이름은 이 무렵에 벌어진 나주 전투에서 나온다. 당시 동학농민군은 거의 전라도 전 지역을 장악하였으나 양반과 지주들의 반대가 극심했던 나주, 남원, 운봉지역 등은 예외였다. 그리하여 1894년 7월 농민군 지도자 최경선과 나주접주 오권선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나주성을 공격하게 된다. 이때의 전투는 주로 나주성 서성문에서 이루어졌다. 이 전투에서 많은 농민군이 목숨을 잃었는데 강봉희는 바로 이때 전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강봉희의 나이는 31세. 그의 짧은 생은 거기에서 마감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했기에 31살이라는 짧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까?
강봉희는 매우 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의 부조리를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동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알려지자 이를 받아들였다. 바로 이 점에 대해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 된다. 그는 그러한 생각에 기반해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당시 부안지역의 동학조직은 김낙철 접주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그는 전봉준의 1차 봉기에 호응하지 않았으며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봉희도 백산대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강봉희는 김낙철 접주와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다음 달에 다시 부안에 들어오자 바로 합류한 듯하다. 바로 이 판단과 선택 그리고 행동이 강봉희의 삶을 결정한 것이다. 그 결정으로 그는 안타깝게도 1894년 어느 여름날 나주성 서성문 근처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봉희는 역사에 이렇다하게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강봉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어가는 것은 강봉희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강봉희의 삶은 드러나지 않고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처럼 작은 희생들이 바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임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송원환(宋元煥, 1853∼1895)

송원환은 1853년 5월 20일 흥덕에서 아버지 송사칠과 어머니 경주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 송사칠이 일찍 생을 마감하자 어머니 경주이씨는 친정이 있는 부안 주산면 흥해 부근으로 이사했다가 부안 백산면 공작리에 터를 잡았다. 송원환은 공작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송원환은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지만 영리하고 똑똑하였으며 체격이 좋고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했지만 많이 배우지 않았다고 하며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송원환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하는데,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생각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송원환이 동학농민혁명에 직접 참여한 것은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백산대회를 개최하여 농민군으로서 조직을 체계화한 1894년 3월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송원환이 살았던 공작리는 백산대회가 있었던 백산성 바로 인근이다. 송원환은 이때 합류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42세였던 송원환은 부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송원환은 동학농민군이 백산에 주둔하자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군량미 등으로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송원환은 동학농민군과 함께 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갔던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송원환이 어느 전투에 참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호남초토사 민종열이 전라도 각지에서 체포한 동학농민군들의 성명 및 수효와 그 처리사항, 노획품의 수량 및 그 노획자의 성명 등을 중앙에 보고하기 위해 1895년 1월 작성한 「전라도각읍소획동도수효급장령성명병록성책(全羅道各邑所獲東徒數爻及將領姓名竝錄成冊)」에 따르면 “乙未 正月 初十日 宋成九 等 九名 捉囚該縣使之嚴覈得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석하면 “1895년 1월 10일 송성구 등 9명은 해당 현에 잡아 가두고 엄중히 조사하여 실상을 파악하도록 하였다”인데 엄중히 조사하였다는 것은 죄질이 중벌에 처할 정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족보에 사망일이 1895년 1월 10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바로 이때 처형당했다고 보여진다. 송성구는 송원환의 다른 이름으로 호적에는 송원환이라고 되어 있고 족보에는 송원환의 호가 성구로 되어 있어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송원환(송성구) 체포 사실이 기록된 「全羅道各邑所獲東徒數爻及將領姓名竝錄成冊」

후손들에 따르면 동학농민군이 패배한 뒤 송원환은 친구 곽모씨와 함께 자신이 살았던 공작리 앞들에 있는 작은 산인 개암산 밑 토굴 속에 은신하였다고 한다. 송원환의 부인은 밤에 아무도 모르게 토굴을 파면서 흙을 함지에 담아 머리에 나르는 고생을 하여 토굴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송원환과 곽씨가 토굴에서 숨어 지내자 동학농민군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던 자들이 송원환의 부인을 괴롭혔지만 송원환의 부인은 자신의 왼팔을 식칼로 찌르면서까지 은신처를 발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곽씨의 부인이 고문을 당한 끝에 결국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어 곽씨는 석방되고 송원환은 처형되었다고 한다.
송원환은 42세의 길지 않은 생을 그렇게 마감하였다. 송원환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단 한 줄이었지만 그의 삶은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송원환은 어린 시절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많이 배우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은 강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동학농민군이 백산에서 대회를 개최하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 등을 농민군의 식량으로 제공하며 농민군에 동참한 듯하다. 아마도 송원환은 농민군의 대의가 옳다고 판단하고 농민군의 편이 되기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송원환 같은 판단과 선택과 행동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분연히 결심했고 농민군이 되었다. 결국 그의 판단과 선택과 행동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송원환은 아마도 그의 선택이 종국에는 죽음으로 결론지어질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판단을 실천으로 옮기고 역사의 흐름에 몸을 던졌던 것이다.


김기병(金基炳, 1831∼1895)

김기병은 1831년 1월 21일 부안 상서면 내동에서 아버지 김두회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준수한 용모에 기골이 장대하고 의지는 강직하였으며, 또한 효성이 지극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김기병은 64세의 고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병은 동학농민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김기병은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부안에 주둔한 1894년 4월경에 합류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때 김기병은 적극적으로 농민군에게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농민군 활동을 지원했을 것이다. 김기병이 동학농민군의 전투에 참여한 내용은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령이었던 그가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아마 동학농민군에 대한 지원을 맡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동학농민군이 패배한 뒤 마을 주민의 밀고로 체포되어 1895년 2월 10일 8명의 농민군과 함께 부안읍 동문 밖에서 총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40세였다. 동학농민군의 연령을 보면 지도부는 대개 40대였으며 20대와 30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김기병처럼 60대가 참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나이에 구애되지 않았던 것이다. 1894년이라는 시간 속에 그리고 부안이라는 공간 속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맞이하여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했다. 나이가 60이 훨씬 넘은 김기병은 동학농민군이 옳다고 판단하고 동학농민군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으로 행동하다가 결국 시대의 증언자로 운명했다. 인간의 삶은 무수한 판단과 선택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1894년과 같은 사건을 다시 직면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판단과 선택과 행동을 하게 될까?


▲김기병 묘(개암사 입구)

덧붙여 말하고 싶다. 동학농민혁명은 전근대의 질곡을 깨며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꾼 도도한 물결이다. 수천 년 억눌리고 짓밟혀온 무지렁이 농민들이 분연히 일어나 스스로 역사의 주인임을, 그리고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만천하에 떨친 대 사건이다. 궁벽한 부안의 농민들도 그 흐름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백산은 바로 그 중심이었으며 강봉희, 송원환, 김기병 등은 자기 시대의 큰 물결을 외면하지 않고 역사의 한복판을 당당히 걸어 나간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빛도 이름도 명예도 없이 그렇게 스러져갔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분들은 오늘날 지독한 무관심과 망각 속에 잊혀져가고 있다.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고 기록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분들의 고귀한 결단과 희생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과 회한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자취를 기려나가야 한다. 결단과 실천이 그들의 몫이었다면 그 숭고한 걸음을 밝히고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의 편이다. 그리고 미래는 그렇게 역사를 소중히 지켜나가는 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병규(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부안이야기 12호>에서 옮겨왔습니다.

(부안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