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섬/간조 때에는 하섬 앞에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는데 이 갯벌은 이 지역 주민들의 찬장과도 같은 곳이다. 삼발리 해안에서 하조대까지는 모래펄갯벌, 하조대에서 하섬으로 이어지는 칫등 주변은 자갈과 모래가 섞인 혼합갯벌, 하섬과 진여(긴여) 주변은 조수웅덩이가 발달한 바위지대 등 갯벌 스펙트럼이 펼쳐지는 곳으로 종 다양성의 보고이다. 바위지대에는 굴, 고둥류, 민꽃게, 똘장게(현지어 무늬발게, 풀게의 통칭) 등의 게류와, 파래, 청각, 톳, 돌김, 쥐충이 등의 해조류가, 모래펄갯벌에는 해방조개, 맛조개, 개불, 낙지 등이, 칫등 주변의 혼합갯벌에는 많은 양의 바지락이 묻혀 있다.

"마포의 명물, 성천 앞바다와..."
벚꽃과 시내, 바다와 산이 어우러졌던 고향 마포의 기억(2)

마포의 명물, 성천 앞바다와

마포의 명물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성천 앞바다를 빼놓을 수 없다. 서해안이 대개 긴 갯벌을 가지고 있지만 성천의 갯벌은 변산 해창 갯벌과 더불어 긴 모래사장과 갯벌의 질이 아주 좋았다. 이런 갯벌에는 수만 가지 생물이 모여 산다.
동네 사람들은 가끔 성천 앞바다에 나가 부대에 가득히 백합을 비롯한 많은 조개를 캐어 맛있는 국거리로 삼았다. 시냇물에서 배운 헤엄을 둠벙에서 좀 더 발전시키고 다음에는 바다로 진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항상 큰 도전이요 범접하기 어려운 원대함을 보여주기에 그곳에서 자라는 사람은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성천 앞바다 갯벌은 세상의 모든 오물들을 정화시켜서 어느 것도 모방할 수 없는 맛거리를 제공하기에 소년들은 바닷가에 나가 드넓은 갯벌을 놀이터 삼아 석양이 기울 때까지 놀다 돌아오곤 했다.
성천 앞바다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썰물이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섬까지 길이 생겨났다가 밀물이면 다시 바닷물로 채워지는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섬에는 원불교 수도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곤 했다. 섬으로 넘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에 집중하다가 밀물이 들어오는 것을 늦게 알아차리고 쫓기듯 달려 돌아오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냐하면 바닷물이 목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다리를 헛짚어 짠 바닷물을 들이키는 위기의 순간들은 평생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창(새만금끝막이 전)


▲해창(새만금끝막이 후)/그 좋던 갯벌엔 잡초만이 무성하다.


갯벌의 수난, 새만금의 비극  

이런 귀중한 갯벌도 실용주의를 주창하는 개발론자들에게 수난을 겪기 쉽다. 농토나 국토를 넓힌다는 명목으로 아무 가치도 없어 보인다며 갯벌을 없애고 농지나 공장부지로 바꾸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노태우 정권에서 시작한 새만금 공사는 전북의 경제를 살린다는 허울 좋은 슬로건으로 저지른 최대의 환경 파괴이다.
해창 새만금에서 마포 성천에 이르는 갯벌은 우리나라의 최대 규모의 갯벌인데 이것을 환경과 생태에 대한 충분한 연구도 없이 정치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다. 어민들은 당장 많은 보상금을 받아서 힘든 어촌 생활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이야 쓰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지만 갯벌은 만대에 이르도록 지구를 정화시켜주고 그들에게 풍성한 해산물을 줄 천혜의 선물이 아니던가. 그것으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생활을 했건만 순간의 물욕이 생명체인 갯벌을 개발업자와 정치인들 손에 넘기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갈 때마다 맛있는 백합죽을 끓여주던 식당들은 이제 그 싱싱한 맛을 잃고 말았다.
필자는 고향에 갈 때마다 황금빛 석양의 노을로 물든 바다에서 조개를 캐던 여인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그 정겨운 정취 대신에 눈에 다가서는 것은 거대한 새만금 제방이다. 그 옆에는 이제는 쓸모를 잃어버린 폐선들이 마치 사체처럼 남아있는 것을 본다. 이 거대한 문명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것인가. 필자는 변산 바다가 주던 낭만적이고 평화적 이미지가 파괴되어 파편화된 모습이 묘사된 필자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석양에
금빛 파도 손을 흔들며
해창 갯벌 조개 줍던 여인들은
다 어디 가고
풍어를 약속한다던
청승맞은 장승들만
망연히 서있네
백합조개 한 자루
머리에 이고
펑퍼짐한 엉덩이 흔들며
썰물로 길어진 갯벌 길도
마냥 즐거워 연실 웃어대던 아낙들
간 곳 없고
조개 썩은 고린내에 찡그리는
폐선 한 척
회색 갯벌에 뒤집힌 채
잠자고 있구나

끝없는 새만금 방조제 너머로
갈매기 서너 마리
끼욱끼욱 우는 사연은
텅 빈 소라껍질 속으로
허덕허덕
헐떡이며 기어가는
참게 한 마리  
물거품으로 애설피 부르는
장송곡이리라

        〈갯벌의 비가〉 전문


▲박영근 시인/2001년 봄 계화산에 올라 새만금을 둘러보고 있다.


▲박영근 시인 4주기 추모문학제(2010년 5월 15일)가 그가 다녔던 (옛)마포초등학교에서 열렸다.


박영근 시인의 추억과 시가 남아있는 고향

박영근은 필자의 친동생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유명한 운동가요의 작사가로서 잘 알려진 노동자 시인이지만 사실 탁월한 서정성을 시화시킨 문인으로 신동엽 창작기금,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뛰어난 시적 감수성을 가지게 된 배경은 지금까지 필자가 소개한 변산 마포의 자연적 아름다움이 아닐까 한다. 그가 부평을 중심으로 현장운동을 하면서도 마포는 정신적 고향으로서 그가 좌절할 때 힘을 주는 에너지원이었다. 그가 아직 철없던 초등학교 5학년에 익산으로 전학하여 초등학교를 마치고 익산 남성중학교를 다녔으니 고향에서 자란 것은 11년 남짓한 세월이었다. 물론 방학 때 돌아와 고향에서 지냈지만 고향의 수려한 자연과 서정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은 유년과 초등학교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전주고등학교를 다니다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진보적인 사고에 접하여 학교생활을 그만 두고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했는지는 여기서 논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팍팍한 현장 운동에서 지치면 매번 고향에 돌아와 며칠이고 술과 고향친구를 벗 삼아 지내다 다시 돌아가곤 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박영근은 고향에 돌아올 때마다 그의 정서와 영혼을 길러준 고향산천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헤쳐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박영근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단지 마포의 자연 환경이 아니었다. 고향 마포도 부안에서 격포까지 직선도로를 내느라고 차선에서 비켜나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굽이굽이 흐르던 시냇물도 저수지에서 직선으로 수로를 내면서 옛날의 정겨운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격포에 위치한 채석강은 방파제를 만든다고 옛날의 침식된 암반들을 가로막아 버린 상태다. 특히 필자가 위에서 논한 새만금은 결정적으로 그의 가슴을 찢어놓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는 파괴되어 가는 고향의 이미지들을 되살리려고 〈고향의 말 4〉란 시에서 비극적인 어조로 울부짖는다.

돌아오너라, 해창벌 밀물이 들어도 어둡고
돈 한 푼에 팔려서 네 아우들
헛주먹 감추고 떠나고 있으니
싸락눈 내려 쌓이는 노루목
흐린 서울길 지우며 큰 바람 울 때
보리밭 외진 두렁에서
네 어미, 옷고름마다 끓는 눈물로
시퍼런 쑥물을 들이고
보듬는 하늘 캄캄히 서리서리 피 적시는
눈송이여 뜨거운 맨발로 붉은 흙 한 짐 다져지고
허기진 별빛으로 들잠 밝히며
발자욱들 시퍼렇게
돌아오너라, 봄빛 서러운 눈길 위에 네 어미
칼꽃 그려 접고 있으니
부르도저에 깎여버린 산허리 돌아
갯들을 건너

시인은 출세하거나 돈을 벌려고 고향을 떠난 자들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한다. 고향은 불도저로 산허리가 깎이고 갯벌이 괴기스러운 문명의 감옥 같은 둑으로 가로막히는 형국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러나 그마저 현장운동을 하다가 몸이 상하여 죽음의 길로 가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고향이 옛 모습을 잃어가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우리 모두의 생명줄이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고향에 대한 매우 뛰어난 생태시를 쓴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업적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5년 전 그의 4주기 추모행사가 한국작가회의와 전북작가회의 공동주관으로 그가 다니던 마포초등학교에서 열리게 되었다. 아쉽게도 마포초등학교마저 취학아동의 부족으로 폐교가 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필자는 친구들 모두 떠난 고향에 마치 이방인처럼 찾아와 〈마포에서 영근이를 만나다〉라는 시를 썼다. “철부지로 뛰어 놀던 마포초등학교에서/너의 4주기 추모식을 가지다니/가슴이 미어져/교문을 들어서기 힘들더라/네가 끔찍이도 사랑하던 아내는/손님들을 맞느라 분주한데/너는 어디에 있는 거냐/꿈에도 그리던 고향의 산천들은/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하고/산세가 수려한 변산의 산맥들은/변함없이 기운차고/성천 앞바다 파도 소리는/그 옛날 리듬을 잊지 않았더라/여름날 네가 친구들과 멱을 감고/데워진 조약돌을 귀에 대고/물을 말리던/실개천은 왜 그리 작아 보이는지/서럽기만 하더구나/시디신 김치에 막걸리 한 잔 들이키며/가난한 시골 살림 한탄하던/이웃 농부들은 보이지 않고/허연 수염을 늘어뜨리고/도사 행세하는 너의 죽마고우가/너를 못잊어/나에게 술주정하는구나/멀리서 찾아온 문우들 슬픈 눈물 속에서/영근이 너를 만난다/고향에 와서 말이다.”
필자는 이제 고향은 가슴 속에만 남아있는 것인가 자문해본다. 역설적으로 박영근 시인이 〈고향의 말 4〉에서 호소하는 것처럼 이제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본다.

/박정근(대진대학교 영문과 교수)

<부안이야기 12호>에서 옮겨왔습니다.

(부안 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