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백산봉기 113주년 기념대회(2007년) 백산고등학교 학생들이 '보국안민'의 깃발을 들고 백산성으로 항하고 있다.ⓒ부안21

"부안에서 꽃이 피어 부안에서 결실을 보리라
(花開於扶安 結實於扶安)"
부안과 동학농민혁명

부안의 동학 전파는 김낙철(金洛喆 1858~1917)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낙철은 부안김씨로 자(字)는 여중(汝仲), 도호(道號)는 용암(龍菴)이며, 부안읍 봉덕리 쟁갈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체격이 크고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700석 정도를 거두는 부자였다.

들어가며

미륵신앙을 대중화 시킨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부안 땅을 찾은 이후, 부안은 이상향(理想鄕)의 땅으로 널리 알려졌다. 조선시대에는 승려들의 비밀결사조직체인 당취(黨聚)가 지리산과 더불어 변산을 거점으로 하였으며, 선지자(先知者)와 혁명가(革命家)들을 비롯하여 변혁(變革)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새로운 종교운동과 정신운동을 펼치고자 했던 활동가들도 수없이 다녀갔다.

소설 홍길동을 통해 이상향을 꿈꾸었던 허균(許筠)이 한동안 머물던 곳이며, 18년간 우반동 반계서당에 칩거하면서 『반계수록』을 집필하여 조선 실학(實學)의 선구적 역할을 한 반계 유형원(柳馨遠)의 혼이 서린 곳이며, 월명암(月明庵)에서 반농반선(半農半禪)의 기치를 내걸고 불교개혁운동을 펼쳤던 백학명(白鶴明) 스님이 거주하였고, 1916년에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朴重彬) 대종사가 5년간 변산에 은거하면서 교단 창건에 몰두했던 일 등은 앞서 언급한 대로 부안이 이상향의 땅으로 알려진 것과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

부안과 동학의 인연은 1860년부터 확인되며, 이듬해 7월에는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의 부안 방문이 있었다. 그 때 옹정리(瓮井里 ; 현재의 부안읍 옹중리)에 사는 김영조(金永祚)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부안에서 꽃이 피어 부안에서 결실을 보리라(花開於扶安 結實於扶安)"라고 하였다. 장차 부안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땅이 될 것으로 예언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통해서 부안이 역사적으로 이상향의 땅이자 변혁을 위한 성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동학의 부안포교

1860년 창도된 동학은 이듬해 교조(敎祖) 최제우(崔濟愚)에 의해서 호남의 수부(首府)인 전주에도 포교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포교는 1864년 최제우가 좌도난정(左道亂政)의 죄목으로 순교하면서 맥이 끊겼다. 그 뒤 1880년대 초반 제2대 교주 최시형에 의해 포교되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하여 점차 확산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즈음 동학은 1880년대 교단의 정비와 조직화 그리고 경전 간행 등을 계기로 하여 점차 교세를 확장하였고, 해당 지역 출신 지도자들의 포덕으로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부안의 동학 전파는 김낙철(金洛喆 1858~1917)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낙철은 부안김씨로 자(字)는 여중(汝仲), 도호(道號)는 용암(龍菴)이며, 부안읍 봉덕리 쟁갈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체격이 크고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700석 정도를 거두는 부자였다.

김낙철은 1890년 6월, 동생 낙봉(洛鳳)·낙주(洛柱) 및 사촌 동생인 낙정(洛貞)·낙용(洛庸) 등과 함께 동학에 입교하였다. 김낙철은 입도한 다음 바로 포덕에 나섰고, 이듬해 3월경에는 따르는 교인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김낙철이 어떤 연유로 동학을 알게 되고, 그를 동학으로 이끈 인물이 누구이며, 동학에 입교하게 된 목적이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입교 후 포덕으로 불과 1년이 되지 않은 기간에 교인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 당시 김낙철이 부안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비중을 짐작케 한다.

1891년 3월 이후에는 부안 옹정(甕井) 출신의 김영조(金永祚·金錫允)와 동생 낙봉 그리고 무장 대접주 손화중(孫化中) 등과 함께 충청도 공주 신평에 머물러 있던 최시형(崔時亨)을 찾아가 지도를 받았다. 그 해 7월 최시형은 김연국(金演局) 등과 함께 부안을 직접 방문하였고, 그 당시 부안의 접주였던 옹정(甕井) 김영조 집에 머물렀다. 최시형은 다음 날 길을 떠나기 전에 "부안에서 꽃이 피어 부안에서 결실을 보리라(花開於扶安 結實於扶安)"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1890년 6월 이후 부안에는 김낙철 등이 동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포덕의 결과 불과 1년이 못 돼 교인 수가 수천 명에 이르는 등 동학의 교세가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최시형이 직접 순회할 정도로 동학 교단 중심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부터 동학에 입도하여 활동한 인물에 대해서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교조신원운동과 광화문 복합상소

1892년 10월부터 1893년 4월까지 공주취회를 시작으로 하여 삼례·서울 광화문 복합상소·보은·금구취회로 이어진 교조신원운동은 동학농민혁명의 전사(前史)를 이루는 중대한 사건이다. 교조신원운동의 핵심은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고 동학을 공인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더불어 동학의 포교를 금한다는 이유로 동학교도를 불법으로 침탈하는 폐단을 금지시켜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종교운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동학의 이러한 움직임은 동학의 절박한 사정일 뿐 아니라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동학은 여기에 척왜양(斥倭洋)을 포함시켜 민중의 요구를 대변하였고, 이를 통해 동학은 민중과 밀접하게 결합될 수 있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남접과 북접의 대립 및 김낙철과 최시형의 밀접한 관계를 근거로 김낙철 등이 이끄는 부안의 동학은 교조신원운동기는 물론 1차 봉기 때에도 동참하지 않았고, 2차 봉기 때에야 비로소 가담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부안의 동학이 구체적인 집단행동을 한 것은 교조신원운동기부터이다.

교조신원운동기 김낙철을 중심으로 한 부안지역 동학의 움직임은 광화문 복합상소에서 확인된다. 공주와 삼례취회 때에 이들이 참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김낙철은 동생 낙봉을 비롯하여 동향의 김영조 등과 함께 수백 명의 교인들을 이끌고 상경하여 광화문 복합상소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보은취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상경하다가 해산하라는 동학교단의 지시에 따라 귀가하였다. 복합상소가 실패로 돌아간 뒤 정부의 동학에 대한 지목(指目)이 더욱 심해져 다수의 도인이 체포되거나 사형(死刑)에 처해지는 등 탄압이 극심하였으나 김낙철은 포덕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고부봉기와 백산

1894년 1월 10일 고부에서 기포한 동학농민군은 고부관아를 점령하였으나 전주감영의 전봉준 암살 실패와 관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그 당시 고부에 속한 백산으로 이진(移陣)하였다. 그리고 성을 쌓고 20여 일을 머물렀다.

이후 백산은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의 하나가 되었다. 즉 백산은 3월 20일 무장기포 이후 호남 일대 동학농민군이 연합전선을 형성한 곳으로 이곳에서 선언한 격문과 4대 명의, 그리고 12조의 기율은 동학농민군을 혁명군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하는 한편 이후 호남 일대를 점령하고 마침내 전주에 입성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 당시 고부군에 속했던 백산은 지형적으로 대부분이 평야를 이루어 논농사가 활발하며, 농경지를 중심으로 집촌을 이루고 있었다. 지리적으로는 동진강이 동쪽 경계를 흐르며, 고부천이 백산의 서부를 남북 방향으로 흘러 서해로 흘러간다. 그리고 일찍부터 정읍·김제·신태인 방면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어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였다. 또한 '백산이야말로 만백성을 살릴 수 있는 땅'이라는 비결로 인해 민중에게는 길지(吉地)로 인식되었다.

1차봉기와 집강소시기의 부안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군은 1894년 3월 20일 무장에서 봉기하였다. 이 때 부안의 동학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 당시 부안의 동학을 이끌고 있던 김낙철은 무장봉기 이후 동생 낙봉을 최시형에게 보내 그 대응책을 물었다. 이에 최시형은 "此亦時運이니 禁止키 難하다."고 하면서도 자중(自重)할 것을 지시하였다. 전봉준의 봉기를 사실상 용인(容認)내지 묵인하면서 김낙철에게는 자중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김낙철을 중심으로 한 부안의 동학은 독자적인 활동을 단행하였다. 4월 1일 김낙철은 수백 명의 교인들을 이끌고 부안읍내로 들어가 서도면 송정리 신씨재각에 도소(道所)를 설치하는 한편 동생 낙봉과 교인 신소능(申小能)으로 하여금 줄포(茁浦)에도 도소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전봉준의 농민군과 다른 형태였다. 즉 부안현감 이철화(李哲和)의 요청에 따라 부안현 관내만 장악하고 치안을 유지할 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전봉준의 농민군에 합류하지는 않은 것이다.

한편 다른 자료에 의하면, 4월 1일에 500명의 동학농민군이 부안의 하동면에 모여서 진을 쳤고, 4월 4일에는 부안현을 점령한 뒤 현감을 억류하고 공형(公兄)을 결박한 다음 무기를 빼앗고 상소산(上蘇山)에 진을 쳤다고 한다. 이 때 김낙철은 손화중과 협의하며 치안을 유지하였다. 또한 7월경에는 새로 부임한 신임현감 윤시영(尹時榮)과 함께 향촌의 일을 상의하며 처리하였다. 이로 보아 1차 봉기와 집강소 시기의 부안은 김낙철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군과 부안현감 사이에 협조체제를 유지하며 질서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체계를 유지한 집강소의 가장 큰 특징은 충돌이 거의 없어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농민군을 가장한 무뢰배(無賴輩)에 의한 약탈행위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부안은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진원지인 고부나 백산, 황토현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치안이 잘 유지되었다. 그 결과 흉년으로 인해 줄포로 미곡(米穀)을 구하러 온 제주도 어민들이 무사히 미곡을 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제주도 어민의 아사(餓死)를 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부안에서 1차 봉기에 참여한 지도적 인물로는 신명언(申明彦)과 백역구(白易九)가 있다.
  
2차봉기와 부안
  
전봉준은 재판 과정에서 9월의 삼례봉기 때 각 지역의 동학 지도자들, 즉 접주급 이상 지도자들과 동모(同謀)하였다고 진술하였는데, 부안의 동학 지도자는 김석윤(金錫允)과 김여중(金汝中)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김석윤은 김영조를 말하며, 김여중은 바로 김낙철이다. 그리고 김낙철의 동생 김낙봉(金洛封·鳳)을 비롯하여 신명언(申明彦), 강봉희, 신윤덕, 이준서, 신규석 등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2차 봉기에 나선 동학농민군은 1894년 11월의 금구 원평과 태인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군에게 패하면서 흩어졌다. 이때 부안의 동학농민군도 뿔뿔이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안 접주로 활동한 송성구(宋聖九. 字 元煥, 1853~1895)와 상서면 내동 출신의 김기병(金基炳. 字 乃弘, 1831~l895)은 이듬해인 1895년 초에 붙잡혀 처형당하였다. 그러나 김낙철 형제 이외는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부안의 동학지도자 김낙철은 1894년 12월 11일 동생 낙봉과 함께 체포당했다. 그 즈음 부안에서 체포된 32명의 동학농민군은 1894년 12월에 나주로 이감되었다. 이들 중 김낙철 형제와 3명을 제외한 27명은 곧바로 처형당하였다. 한편 김낙철이 나주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제주도민 백여 명이 나주진영에 몰려가, 흉년에 김낙철이 제주도민 양곡선을 구해준 사실과 구명을 애원함으로 처형은 면하고 서울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판결선고서에 따르면 김낙철이 동학당에 들어간 것은 확실하지만 범죄에 대한 증빙이 확실치 않아 무죄로 풀어준다고 하였다.

나오며
  
부안의 동학농민군 지도자 중 확인된 인물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나마 김낙철·낙봉 형제는 『김낙철 역사』와 『김낙봉 이력』을 남겨 행적을 추적할 수 있으나 김영조 등은 확인조차 어렵다. 뿐만 아니라 2004년 동학농민군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유족(遺族)의 신청으로 명예가 회복된 동학농민군 역시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불과 22명에 불과하고, 이들의 행적 역시 소략하다.

이처럼 부안의 동학농민군 행적은 알려진 것이 적고, 부안지역의 동학과 농민군에 관한 전반적인 역사적 평가는 정리된 적이 없다. 해마다 백산봉기를 기념하였으나 연례행사에 치우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행히 백산면 단위의 행사에서 2008년부터 부안군 단위의 행사로 격상시키고,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백산 봉기일을 조명하는 학술대회와 강연회 등을 추진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 부안군 단위를 아우르는 조사와 발표 그리고 선양 사업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대길/동학농민혁명기념관 학예연구사

<부안이야기> 2호에서 옮겨왔습니다.

(부안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