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리ⓒ부안21

오장을 편하게 해 주는 '원추리김치'
[부안생태기행] 원추리

원추리, 참나리, 하늘말나리 등 백합과 식물 등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이들 식들이 꽃을 피울 무렵이면 대개 장마가 몰려오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산자락에 노랗게 핀 원추리는 우중충한 배경 탓인지 더욱 선명해 보인다. 시골 아낙처럼이나 푸근하면서도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원추리...,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본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원추리를 보고 있으면 근심을 잊게 된다.’고 했다고 한다. 또, 옛날 중국에서는 자식이 먼 길을 떠날 때 어머니의 근심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집 뜰에 원추리를 심었다고 한다.

뜰에 핀 꽃 한 송이를 보며 세상살이 근심걱정을 잊어보려는 옛사람들의 지혜려니 생각되어지지만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보다 구체적이다. 예부터 원추리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데 으뜸가는 약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진(晉)나라 때 장화(張華)가 엮은 수필집인 박물지(博物誌)에는 원추리를 먹을 경우 사람을 즐겁게 하고 근심걱정을 잊게 해 ‘망우초(忘憂草)’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원추리를 ‘의남초(宜男草)’라고도 부르는데, 믿거나말거나..., 아들을 낳게 해준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여성들은 남성들과는 달리 출산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신체적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런 여성의 몸을 보호해 주는 풀이 바로 원추리라 하여 그런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는 듯하다. 어쨌든 근심걱정 잊게 하고, 아들까지 낳게 해준다면 세상에 이보다 좋은 풀이 또 있을까.

원추리는 뿌리, 잎, 줄기, 꽃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이 요리로, 차로, 한방 및 민간요법으로 다양하게 애용되어 왔다. 원추리의 우리말 이름은 ‘넘나물’ 또는 ‘넓나물’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봄철에는 어린 싹을 나물로 먹는데 맛이 달고 부드러우며 담백한 게 봄나물 중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정월대보름날에는 넘나물국을 끓여 먹는 풍속도 전해지고 있다.

어린 순과 꽃은 말려 차로도 마시지만 김치를 담그면 맛이 아주 그만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꽃으로 쌈을 싸 먹기도 하고, 밥을 지을 때 밥 위에 넣어 색반(色飯)을 만들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원추리를 금침채(金針采) 등으로도 불리는데 원추리 꽃봉오리를 끓는 물에 데쳐 말린 것을 요리에 이용한다고 한다. 원추리 뿌리는 자양강장제로도 쓰이고 녹말을 추출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도경본초>에는 원추리로 김치를 만들면 흉격을 이롭게 하고 오장을 편하게 하며, 몸이 가벼워지고 눈이 밝아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초강목>에는 원추리의 싹과 꽃은 독이 없어서 삶아 먹으면 황달이 치료되며, 소화를 돕고, 습열을 치료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고서의 기록이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원추리에는 항우울증 치료 효과가, 원추리 잎과 뿌리에는 염증과 황달 치료에 효과가 있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원추리 꽃잎에는 암세포를 사멸하는 효능이 있는 여러 종류의 새로운 안트라퀴논류의 성분들이 함유돼 있음이, 원추리의 잎과 줄기에는 대장암 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강력히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이 보고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풀 전체(全體)를 차로, 나물로, 김치로, 약재로 이용할 수 있는 원추리를 새로운 경제작물로 대체하는 방안은 어떨까... 이미 원추리를 재배해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는 마을이 있었다. 경향신문(2006-05-23) 보도에 따르면 충남 부여군 은산면 거전리 마을이 바로 원추리 마을로 이 마을은 1994년에 시작해 지금은 62가구 177명이 400ha농경지에 원추리를 경작하고 있다고 한다.

/허철희 huh@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