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꽃 같은 웃음으로
조국 한반도를 껴안았던
허영철 선생을 그리며
[부안역사문화기행] 허영철

허영철 선생을 처음 뵌 것은 1994년 여름 어느 식당으로 기억된다.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였다. 공산주의자, 혁명가, 간첩, 비전향장기수 다 마땅찮은 수식이었다. 무척 인간적이고 경위 바르고 남 배려하고 검소한, 매사 빈틈없는 그런 어른이었다. 이후 만남은 주로 내가 뵙고 싶어서 이루어졌다. 참 편안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분이어서.
선생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 민족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체험한 보기 드문 인물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선생과의 만남이 있었고 나의 교양을 쌓았을 뿐 아무런 역할이 없었음을 부끄러이 고백한다.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천박한 안목으로 감히 선생을 논한다는 것이 애시당초 당치 않은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은 우물 안에서 보이는 하늘만 그린다는 사실도 밝혀 둔다.  


▲허영철 선생과 필자

36년의 감옥살이

36년간의 감옥 생활이 어찌 고난의 연속이지 않았겠는가마는 선생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외려 연민과 걱정의 입과 눈들을 위로한다. 감옥에서 몽둥이질, 비행기 타기, 물고문, 전기고문, 손톱, 발톱 뽑기 따위의 숱한 고문의 연속이었을 텐데도.
목포교도소에서 간수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일이며 중풍을 앓는 동료 장기수(유한욱)를 번갈아 가며 돌보는 것을 보고 간수들이 감동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상범이 아니었다. 교도소에서 고등학교 수학과 물리 과정을 터득하기 위해 건빵 봉지나 벽에 비누칠을 하고 꼬챙이로 계산을 해가며 공부를 했다는 사실은 공부하기 싫어 구실을 찾던 지난날의 나를 여러 번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2009년 11월 5일 김제사람들이 마련한 ‘허영철 선생님과의 만남의 밤’에서

그는 남과 북에서 부안군 인민위원장과 장풍군 부인민위원장으로 일했다. 남과 북을 넘나들며 행정 관료를 지낸 보기 드문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호는 역정(力丁)이다. 낫과 고무래를 본 뜬, 일하며 혁명을 꿈꾸는 민중과 인민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조국통일의 초석이 되고자 남녘에 내려왔지만 분단의 조국 현실은 선생을 37년간 감옥 생활로 짐 지웠다. 선생은 강철같은 의지로 온갖 고문을 견뎌냈다. 통일을 향한 불꽃 신념으로 회유와 협박의 전향 공작을 이겨냈다. 비전향장기수라는 또 다른 이름의 선생을 정부는 1991년 2월 26일, 30년 이상 감옥살이하고 70세 이상 고령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출소시켰다. 결국 전향을 한 것은 남한 정부였다.    
선생은 수감된 지 36년만에 출옥했다. 젖먹이 딸과 생긴 지도 몰랐던 아들을 두고 떠난 지 근 40년 만에 중년의 딸과 아들, 할머니가 된 아내가 있는 집으로 온 셈이다. 고향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리던 두 동생은 전쟁의 와중에 사망했고 가까이 지내던 동지들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대환영했다. 그가 동네에서 이웃들에게 참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왼쪽부터 부안 출신 비전향장기수 신인영, 임방규, 손성모, 허영철

아파트 경비로 일하다

출소 후 1년여 그간 징역(선생 표현)살 때 도움 주었던 사람들 찾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변산공동체 학교에 가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내심 가보고 싶던 차에 잘 되었다, 하고 차를 몰았다. 윤팔병 넝마공동체 대표한테 장기수들이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던 터였다. 동료들은 그의 동생이 변산에서 공동체 학교를 꾸린다며 찾아가 보라, 했다. 변산면 운산리였다. 윤구병 선생. 국립대 교수를 마다하고 농촌에 내려와 전업농부가 되어 있었다. 부안김씨 선산지기로 부임(?)한 그는 경제, 사회, 교육의 자급자족 실천을 총 지휘하고 있었다. 주택과 먹거리, 의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운산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두 분 선생 앞에서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무장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윤 선생의 손맛이 느껴지는 막걸리와 먹거리는 별미였다. 백초(백 가지 풀)로 만든 효소 장독을 보며 《잡초는 없다》(윤구병 저)를 실감했다. 허 선생의 살아온 삶의 파랑을 듣던 윤 선생은 거칠어진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운산리에 갔었다. 덕분에 국빈 대접을 받았다.


▲2006년 9월 24일 서울 시청 앞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집회에서/그밖에도 ‘한미FTA 반대’ 등의 집회에서 허영철 선생을 자주 뵐 수 있었다.

선생은 다행히 출소한 장기수들 중 가족이 있었고, 부인(조경자 여사)은 생활력이 강해 식구들 먹고 사는데 염려가 없는 편이고 자식들도 일정 사회적 성취를 했다. 편안히 지낼 수도 있는 처지였다. 허나 천성이 가만히 앉아서 밥상 못 받는 성품이었다. 선생은 부안에서 진성아파트, 김제에선 시영아파트 경비 일을 10년 가까이 했다. 주민들은 선생의 성실함과 근면함에 그가 노령이었음에도 믿고 맡겼다. 5년째 근무하던 중 입주민들은 그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그는 세간에 무섭게 덧 씌워진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굳이 주의를 붙여야 한다면 평화주의자였고 인간주의자였다. 한없이 낮아서 겸손했고 더없이 따뜻했다고 만났던 사람들은 전한다. 그를 만나 이야기 해본 많은 사람들이 심장처럼 가까이서 모시고자 했다. 어떻게든 돕고 싶어 했다. 주변에는 학생, 농민, 사회운동가, 종교인, 의사, 교수, 교사, 교장, 출판인, 전직 교육감 등속 나이와 직업을 넘어 실로 방대했다. 무척 부러웠다. 이가 불편하면 치과의사한테, 몸이 편찮으면 해당 과(科)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물론 공짜였다. 내가 보고 싶은 높은(?) 사람은 선생과 함께하면 만날 수 있었다. 나의 든든한 빽(배경)이었다.  


▲아픈 역사의 현장 줄포 ‘40고라당’을 찾은 허영철 선생과 필자

진보적인 단체의 연찬에 초대되어 밤새 토론해도 끄떡없었다. 감옥에서 비누칠한 벽에 꼬챙이로 수학과 물리를 다진 논리는 그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선생은 살아 있는 현대사 사전이었다. 주요 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개인적으로 잘 갈무리한 지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경탄케 했다. 특히 자신이 살아온 기억은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파일을 불러오는 것같이 정확했다. 년도와 날짜 거의 틀림없었다. 선생에게 받은 현대사 과외는 공교육을 훨씬 추월했다.  
그의 웃음보는 곧잘 터졌다. 봄날 함박꽃 같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곤 했다. 평화주의자, 인간주의자, 현자(賢者)의 웃음이었다. 조국 한반도를 따스하게 껴안는 웃음이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남북 공동선언은 평양과 서울의 거리를 이웃 동네 정도로 가깝게 했다. 현재는 너무 멀다.


▲‘부안영화제’를 찾은 허영철 선생

2000년 9월 정부는 남북적십자회담에 따라 북한행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측에 송환했다. 적십자사가 의향을 묻자 선생은 두말없이 남쪽에 남겠다, 했다. 꼭 가족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이남에 남아서 조국과 역사에 대한 시대적 복무를 다하고자 하였다. 당시 북송을 선택했던 분들에게는 북한에서 영웅 칭호와 대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훗날 자신에게 북한에서 국기훈장 1급(2002.09.09)을 수여했다는 사실을 남한에서 알게 된다.
북송이 이루어지기 직전 신인영 선생을 비롯 44명의 장기수들이 부안을 찾았다. 부안을 택한 이유가 부안 출신 장기수가 그 어느 지역보다 많아서였다고 들었다. 수수해 보이는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 영락없는 촌로들이었다. 그들이 징역을 평균 30년 이상 살았다고 믿기 어려웠다. 나는 평소 선생의 삶이 흔적없이 사라지면 안 될까봐 글로 주워 담아 보려고 애쓰는 터여서 같이 징역 살았던 분들의 눈으로 선생을 보아 달라고 여러 분에게 물었다. 한결같이 진정한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결론이 안 나는 일은 선생이 갈무리를 하면 모두 동의했다고.
그는 어른 중의 어른이었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주의나 이념은 그에게 있어 부질없는, 개념 없는 것들이었다고.


국가보안법 폐지 1인 시위

2002년 10월 15일 줄포면 줄포리 후촌마을 야산골짜기, 일명 사십고라당(40명이 학살 당해서 붙여진 이름)에 갔던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백산학원 이사장이었던 고 정진석 선생, 현 생태문화활력소 허철희 대표, 고 김영권(군당위원장 연락병으로, 당시 19세) 씨와 함께 했다. 1950년 7월 20일은 인민군들이 김제 군포교를 거쳐 백산으로 내려 왔던 날이다. 바로 전날 경찰은 부안을 빠져나가면서 국민보도연맹 가입자 예비구금을 감행했다. 그중 40여명을 트럭에 태웠다. 그들은 대부분 양민이었고 사십고라당에서 처참하게 학살당했다(이는 훗날 피의 보복과 온갖 갈등,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단지 한 명만 살아 도망쳤다고 전해진다. 김영권 씨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허영철 선생 육필

2004년 10월 26일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1인 시위를 했다. 자신을 36년 동안 감옥에 가두고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서 누군가를 낚으려 하는 시대착오적 악법 폐지를 위해 85세의 몸을 이끌고 가 교목처럼 서 있었다. 그는 2005년 10월 26일이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평양에 다녀왔다. 아리랑 집단 체조를 1등석에서 관람했다. 2006년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자서전을 보리 출판사에서 냈다. 윤구병 선생과의 인연과 강단이 컸다. 이 책을 내는데 나는 눈곱만큼 역할을 했다. 차 운전과 선생이 쓴 자서전 및 대담 정리를 맡았다. 덕분에 대전의 정부기록보존소에도 가봤고, 형사재판 원본을 복사했다.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을 만나 교도소 문건을 확보하기도 했다. 지인이 빌려준 집에서 여러 날 녹취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출소 후 줄곧 김제 옥산동에 거주했다. 할머니 조경자 여사와 함께. 꽃밭에는 산당화, 석류, 작약, 영산홍과 자산홍, 조팝나무, 산목련 목단 설토화(함박꽃)가 선생의 손 정성으로 피고 지고 열매 맺는 평안을 누렸다. 꽃과 나무와 이웃들을 사랑한 그런 사람을 정보과 형사는 정기와 부정기를 넘나들며 동향파악을 했다.  

형사는 내가 보안관찰법 대상자이므로 나오는 대로 해당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 보존 절차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자진 형식으로 자기가 신고서를 작성해    갔다. … 출소한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년에 한 번씩 검찰에 가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벌써 여덟 번이나 보안관찰법 대상자로 갱신되었다. 갱신을 할 때는 꼭 남이 좋으냐 북이 좋으냐를 묻는다. 아마도 남이 좋다고 하면 보안관찰법을 해제해 줄 것이다. 금년(2005년)에도 도 또 묻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나를 37년이나 징역살이를 시키고 나와서도 15년이나 감시를 해대는데 여기가 뭐가 살기가 좋으냐?”고 했더니 그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339~340쪽)


꾹꾹 눌러 기록을 남기다

그의 삶의 궤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그 누가 따라갈 수도, 가까이라도 갈 수 없을 것이라 믿기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그는 몇 번 손사래를 쳤다. 나의 부탁은 더 간곡했다.  떼쓰기를 못 이기고 그가 꾹꾹 눌러 쓴 글을 읽으면서 몇 번 울었다. 아파트 경비하면서 쓰레기장에서 주운 대학노트, 가계부, 자동차회사 다이어리, 아이들이 쓰다 만 공책에 빼곡히 쓴 글은 단순한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이라기보다는 팔과 다리, 머리와 가슴, 피멍이 든 온몸으로 쓴 핏자국이었다. 민중과 인민의 전범이었다.
그를 만나면 더러워진 몸이 씻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놓아버린 정신줄도 다잡곤 했다. 그가 2005년 평양을 다녀 온 직후 대담에서 ‘인민’에 대한 정의를 묻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말했다.


▲보리출판사에서 발행한 허영철 선생의 회고록《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노동자, 농민, 인텔리, 그 모두를 다 통칭해서 인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인민이란 ‘시대를 각성하는 사람들’이란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각성하고 깨달은 모든 사람들은 다 누가 됐든 인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368쪽)

그가 무지 건강했으므로 늘 곁에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병원은 예외없이 그를 불렀고 대장암을 선고했다. 환자로서도 그는 모범적이었다. 문안 온 사람들 걱정을 먼저 하곤 했다.
그는 2010년 6월 16일 15시 45분 향년 91세의 일기로 영면했다.
그를 아끼던 의사와 고향 병원에서.
지인들을 뒤로하고.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진 빚이 많았으므로.
개인적으로 참 슬펐다.
그를 만난 많은 날 중 슬쩍 끼워넣기로 물었다. 그렇게 감옥을 오래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뭐예요. … 배고픈 거.
그가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배고프다’였다고 들었을 때 밥 한 끼 같이 못한 게 지금도 내내 아리다.
이틀 뒤 ‘고 허영철 선생 통일애국장’이 부안장례식장에서 엄수되었다. 각계 통일애국인사들이 자리했다. 영정이 입장되고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의 약력보고, 전 대표 임방규 선생의 추도사에 이어 오은미 민노당 도의원이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다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며엉에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아가자~던 뜨거우운 매앵세. 도옹지는 간 데 어없고~, 더는 못 부르고 식장을 나왔다. 눈물샘을 걷잡을 수 없어서. 밖에서 끝자락을 들었다. ~아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이용범(시인)

<부안이야기 10호>에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