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 뜯어 꽃다지 쏙쏙 뽑아 나숭개"
[2014년 2월달력] 꽃다지



동장군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오는 봄을 막지는 못한다. 입춘이다. 문자 그대로 봄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추위에 웅크려야만 했던 생물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준비한다.

농촌에서 성장한 50대 이후 세대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넘었던 ‘보릿고개’를 기억할 것이다. 보리가 익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양식은 이미 바닥나고 연명하자니 나물 뜯어다 죽 쑤어 먹으며 황금찬 시인의 싯귀처럼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를 넘어야만 했다.

그러기에 "시집 온 새댁이 나물 이름 서른 가지를 모르면 굶어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처럼 나물이 훌륭한 구황식이 되어주었으니 그런 속설이 지어질 법도하다. 언제쯤, 어디에서, 무슨 나물이 나는지를 훤히 꿰뚫는 새댁이라면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부안 지방에는 나물의 형태와 맛을 빗댄 ‘나물타령’이라는 민요가 전해온다. “내려다 꺾어 고사리/어영 꾸부정 활나물/한 푼 두 푼 돈나물/미끈미끈 기름나물/돌돌 몰아서 고비나물/칭칭 감아서 감둘레/잡아 뜯어 꽃다지/쏙쏙 뽑아 나숭개/어영 구영 말맹이/이 개 저 개 지칭개/진미백승 잣나물/만병통치 삽주나물/향기만구 시금치나물/사시장춘 대나물” <출처:『김형주의 민초들의 옛노래(김형우:남64세, 1981, 부안읍 내요리)』

그 시절 입춘 지나면 벌써 들판의 양지 바른 곳에서는 이제 막 돋기 시작하는 나물을 캐는 아낙들을 볼 수 있었다. 초봄에 나는 어린 새순은 비록 독초라 할지라도 되레 약이 되기에 굳이 나물을 가려 캘 필요도 없으렷다. 봄이 완연해지면 냉이, 꽃다지, 쑥, 고사리, 원추리, 엉겅퀴 등으로 나물바구니는 더욱 풍성해진다. 이렇게 채취해 온 나물들은 삶고, 우려내고, 말려 갈무리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었다. 제사상에 올렸음도 물론이다.

그런데, 이처럼 가난의 상징이었던 나물이 좀 살 만한 요즈음에는 건강식품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산 나물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맛과 향도 뛰어난데다 영양도 만점이다. 뭣보다도 농약이나 제초 등의 공해와 거리를 두고 있어 최고의 웰빙식품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나물류 중에 꽃다지라는 풀이 있다. 1980년대 말, 노래패 〈꽃다지〉의 민중가요 ‘꽃다지’를 접하면서 꽃다지라는 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퀭한 눈 올려다 본 흐린 천장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눈 감아도 보이는 수많은 얼굴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흐린 천장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

위는 희망의 노래패 〈꽃다지〉가 부른 '꽃다지' 노래 가사다. 위의 노랫말처럼 너무나 흔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잡초 취급당하는 꽃다지를 민중의 삶에 비유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래패 〈꽃다지〉는 1980년대 말에 만들어졌으며,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 오면서 정파와 계층을 뛰어넘어 대중적으로 애창되는 <바위처럼>, <민들레처럼>, <단결투쟁가>, <서울에서 평양까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수많은 명곡을 창작, 보급해 왔다.

봄의 전령이랄 수 있는 꽃다지(Draba nemorosa var. hebecarpa)는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로 들이나 밭의 양지바른 곳에서 냉이와 함께 흔하게 자란다.

뿌리에서 나온 털이 보송한 잎들은 땅에 딱 붙어 방석처럼 동그랗게 퍼지는데 그 생김새가 냉이와 흡사하다. 이렇게 땅에 붙어 자라고, 또 솜털이 빽빽이 나 있는 것은 겨울 찬바람을 피하고, 햇볕을 고루 받기 위한 겨울을 나는 꽃다지 특유의 생존전략일 것이다.

곧게 서는 줄기는 높이 약 20cm로 자라며 가지를 친다. 줄기에 달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노란색 꽃은 3∼5월에 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를 이루어 피며, 7∼8월에 익는 열매는 각과로 긴 타원형이고 전체에 털이 난다. 열매에 털이 없는 것은 민꽃다지라고 한다.

한방에서는 꽃다지를 정력자(葶藶子)라 하여 풀 전체와 종자를 이뇨제 등의 약제로 쓴다. 동의보감에는 “꽃다지는 싹과 잎이 냉이같이 생겼으며 노란 꽃이 피고 꼬투리가 달린다. 씨가 기장알처럼 납작하면서 작다. 씨를 훑어 햇볕에 말려 약으로 쓴다. 꽃다지 씨는 폐옹으로 숨결이 가쁘고 기침하는 것을 낫게 하며 숨이 찬 것을 진정시키고 가슴속의 담음을 없앤다. 피부 사이에 있던 좋지 못한 물이 위로 넘쳐서 얼굴과 눈이 부은 증상을 낫게 하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허철희 huh@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