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창 시비/매창공원ⓒ부안21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부안역사문화기행]이매창과 유희경


신석정 시인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고 했다. 황진이, 서화담, 박연폭포를 일컫는 송도삼절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매창은 부안사람이고, 직소폭포는 부안의 명승 중의 제일경이라서 잘 알겠는데, 유희경은 누구인가? 

바로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 정인으로 매창이 평생토록 가슴에 담고 산 사람이다. 

유희경(劉希慶, 1545~1936)은 도저히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없는 천민출신이다. 그런 그가 대시인이자 조선 예학의 최고봉에 올라 그 당시 사대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청사에 그 이름을 길이 남겼다. 허균은 유희경에 대하여 성소부부고 제25권 성수시화(惺叟詩話)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유희경(劉希慶)이란 자는 천례(賤隷)이다. 사람됨이 청수하고 신중하며 충심으로 주인을 섬기고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니 사대부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가 많았으며 시에 능해 매우 순숙(純熟)했다.

유희경의 본관은 강화(江華),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村隱)이다. 한양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자 하루도 떠나지 않고 시묘(侍墓)를 했다. 그리고 편모를 극진히 공양했다. 이러한 그의 효성이 당시 대학자였던 남언경(南彦經)의 눈에 띄어 그에게서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상례(喪禮)에 정통했다. 왕궁은 물론 사대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상(喪)의 집례(執禮)를 청하였을 정도다. 

그는 또 영의정을 지냈던 사암 박순에게서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한시(漢詩)를 잘 지어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하였는데, 자기 집 뒤(창덕궁 서쪽 원동(院洞) 지금의 원서동)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 하고 차천로(車天輅), 이수광(李邈光), 신흠(申欽), 김현성(金玄成), 홍경신(洪慶臣), 임숙영(任叔英), 조우인(曺友仁), 성여학(成汝學) 등과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 같은 천인신분으로 시에 능하였던 백대붕(白大鵬)과 함께 ‘위항시인’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그와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하였는데, 박계강(朴繼姜), 정치(鄭致), 최기남(崔奇男) 등 중인신분 시인의 모임이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전쟁터로 달려갔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위장소서원(衛將所書員)으로 왕비를 호위하였다. 이러한 공으로 선조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다. 사신들의 잦은 왕래로 인하여 호조의 비용이 고갈되자 그 계책을 제시하여 특별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계되었다. 광해군 때에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출론이 일어나자 이이첨(李爾瞻)이 폐출의 소(疏)를 올리도록 청하였으나 거절하며 따르지 않았다. 인조가 즉위하자 그의 절의를 칭송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를 올렸으며, 80세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승계되었다. 저서로는 촌은집(村隱集) 3권과 상례초(喪禮抄)가 있다

이매창과 유희경의 첫 만남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1년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 ‘위항시인’으로서 유희경과 백대붕의 명성은 부안에도 알려진 듯하고, 아울러 한적한 시골 부안의 기생 이매창의 명성도 한양에 잘 알려 진 듯하다. <촌은집>에 이런 기록이 있다.

그가 젊었을 때 부안에 놀러갔었는데, 그 고을에 계생이라는 이름난 기생이 있었다. 계생은 그가 서울에서 이름난 시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유희경과 백대붕 가운데 어느 분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그와 백대붕의 이름이 먼 곳까지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까지 기생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이 때 비로소 파계하였다. 그리고 서로 풍류로써 즐겼는데 매창도 시를 잘 지어 <매창집>을 남겼다.

유희경은 매창을 처음 만나고 다음과 같은 시를 그의 촌은집에 남겼다.

남국의 계랑 이름 일찍이 알려져서
글 재주 노래 솜씨 서울에까지 울렸어라
오늘에사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선녀가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여라
                 
贈癸娘
曾聞南國癸娘名
詩韻歌詞動洛城
今日相看眞面目
却疑神女下三淸
<허경진 역>

유희경의 이매창에 대한 인물평은 허균과는 대조적이다. 허균은 그의 조관기행에서 ‘매창의 생김새는 시원치 않다’고 했는데, 유희경은 ‘선녀가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여라’고 했다. 허긴, 지체 높은 반가의 아들로 벼슬길에 올라 수많은 기생들을 편력해 온 허균, 반면에 천민시인에 마흔여덟의 노총각이라면 여자를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 더구나 유희경은 매창이 열여덟의 꽃다운 시기에 만났고, 허균은 이제 막 그 꽃이 시들기 시작할 무렵인 매창의 나이 스물아홉에 그녀를 만났으니 보는 감회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예의지국을 꿈꾸었던 유희경은 그때까지 기생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나 그때 비로소 파계를 했고, 예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던 허균은 이매창과 술잔을 놓고 종일토록 시를 읊었는데도 잠자리는 같이 하지 못했다. 비록 기생의 신분이지만 매창의 지조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매창과 유희경의 만남은 짧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전쟁터로 떠났다. 짧은 만남이었기에 서로는 더 애틋해 했던듯하다. 매창은 유희경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 서러움과 한을 여러 편의 시와 노래를 지어 부르며 달랬음이 그가 지은 여러 편의 시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중의 한 편이 '梨花雨 흩날릴 제‘이다.

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 시조에 대하여 가곡원류(歌曲源流)는 이렇게 적고 있다.

“계랑은 부안의 이름난 기생이다. 시를 잘 지었으며《매창집》이 있다. 촌은 유희경의 애인이었는데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뒤에 소식이 없었으므로 이 노래를 지어 부르고 절개를 지켰다.“

유희경 역시 매창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오동나무에 비뿌릴 젠 애가 끊겨라

懷癸娘
娘家在浪州
我家住京口
相思不相見
腸斷梧桐雨
<허경진 역>

서로 애타게 그리워하던 두 사람의 재회는 첫 만남 15년 후인 1607년에야 이루어진 듯하다. 

예부터 님 찾는 것은 때가 있다 했는데
시인께선 무슨 일로 이리도 늦으셨던가
내 온 것은 님 찾으려는 뜻만이 아니라
시를 논하자는 열흘 기약이 있었기 때문이라오

重逢癸娘
從古尋芳自有時
樊川何事太遲遲
吾行不爲尋芳意
唯趂論詩十日期
<허경진 역>

대화체의 이 시는 앞의 문장은 매창의 물음이고 뒤의 문장은 매창의 물음에 유희경이 답하는 형식이다. 유희경도 “내가 전주에 갔을 때 매창이 날더러 열흘만 묵으면서 시를 논했으면 좋겠다고 했길래, 이렇게 쓴 것이다.”고 사족을 달아놓았다.

1610년 여름, 매창의 죽음을 전해들은 유희경은 아래의 시를 지어 슬픔을  달랜듯하다. 

맑은 눈 하얀 이 푸른 눈썹의 아가씨
홀연히 구름 따라 간 곳이 묘연쿠나
꽃다운 혼 죽어 저승으로 돌아가
그 누가 너의 옥골 고향 땅에 묻어주리

明眸皓齒翠眉娘
忽然浮雲入鄕茫
終是芳魂歸浿邑
誰將玉骨葬家鄕

마지막 저승길에 슬픔이 새로운데
쓰다 남은 장렴에 옛향기 그윽하다
정미년(丁未年)에 다행히도 서로 만나 즐겼건만
이제는 애달픈 눈물 옷만을 적셔주네

更無旅櫬新交呂
只有粧瞼舊日香
丁未年間行相遇
不勘哀淚混衣裳
<정비석 역>

유희경의 이 싯귀를 들어 이들의 재회가 정미년(丁未年, 1607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창이 38세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가슴 안에 간직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유희경뿐이었다. 유희경 또한 평생토록 매창을 사모하고 그리워했음을 위의 시문(詩文)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서로는 나이를 초월하여 시문으로 사귀고 정을 나누며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허철희/huh@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