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창 시비/서림공원ⓒ부안21




"계생과 술을 놓고 종일토록 시를 읊었다"
[부안역사문화기행] 허균1-조관기행



허균(許筠 1569~1617)과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 첫 만남은 1601년(선조34) 7월23일 이루어진다. 가부(駕部 사복시(司僕寺)) 낭관(郞官)으로 있던 허균은 그 해 6월 전운판관(轉運判官)에 제수되었다. 전운판관이란 종5품 벼슬로 충청, 전라 지방에서 거둔 세금을 배에 실어 한양으로 운송하는 책임을 맡은 벼슬이다. 7월 8일 동작포(銅雀浦)를 건너 남행길에 오른 그는 과천-수원-아산-서천-만경을 거쳐 23일 부안에 도착해 이매창을 만난다. 그날의 기억을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18권 조관기행(漕官紀行)에 남겼다.

1601년 7월23일
부안(扶安)에 도착하니 비가 몹시 내려 머물기로 하였다. 고홍달(高弘達)이 인사를 왔다. 창기(倡妓) 계생(桂生)은 이옥여(李玉汝 옥여는 이귀(李貴)의 자)의 정인(情人)이다.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읊는데 생김새는 시원치 않으나 재주와 정감이 있어 함께 이야기할 만하여 종일토록 술잔을 놓고 시를 읊으며 서로 화답하였다. 밤에는 계생의 조카를 침소에 들였으니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허균이 부안에서 만난 계생(桂生)은 이매창의 본 이름으로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그녀의 호다. 그런데 천하의 여성 편력가 허균이 이매창과 술잔을 놓고 시를 읊으며 종일토록 함께 했음에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단다. 허균이 누구인가. 공무수행 중에도 기생을 데리고 다니고, 기생과 잔 이야기를 버젓이 자기 문집에 남길 정도로 파격의 인물 아닌가.

허균은 이매창과 만난 전후의 시절, 숱한 기생들을 품에 안았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렸던 허균이다. 그 당시 허균의 이러한 이상한 행동들은 사헌부의 단골 탄핵감이 되었다. 허균의 기행(紀行) 아닌 奇行, 妓行을 더듬어 보자면, 1601년 7월23일을 부안에서 이매창과 만났던 허균은 그 며칠 후인 26일 영광에 도착해 “서울 기녀인 낙빈(洛濱)ㆍ선래(仙萊)ㆍ산월(山月)이 함께 그곳에 살고 있어 모두 와서 위로해 주었다. 술은 잔에 넘쳐흐르고 거문고와 노래를 번갈아 연주하는데 우스개 소리를 하다가 달구리가 되어서야 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이튿날인 28일에는 “광주에 도착하니 광주에서는 마침 사신(使臣)을 대접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연회에 참석하라고 여러 번 요청하였으나 가지 않았다. 광주에는 젊은 날 서울에서 정을 준 기녀 광산월(光山月)이 있었는데 그를 보내어 굳이 독촉하니 할 수 없이 참석하였다. 이웃 고을의 소리하는 이는 모두 모아 놓았는데, 술은 동이에 넘치고 고기는 산과 같이 많아 품위가 없었다. 저녁에 한공과 함께 묵었었다. 광산월이 와서 위로하였는데, 평생의 즐거움을 나누며 밤을 새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이후, 공무수행 중임에도 허균은 광산월을 데리고 다녔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심지어는..., 그로부터 보름쯤 후인 8월 14일, 허균의 어머니가 전주에서 설익은 감을 잘못 먹다가 체하여 죽었는데, 장례기간에도 광산월이라는 기생은 그곳에 있었고, 어머니 장례 네 달 후인 12월 14일에야 충청도 은진 부근에서 그녀와 이별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모친상 중에도 기생을 끼고 공무를 보았다.’는 등의 탄핵거리를 제공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허균은 1597년 이래 중국사신들을 맞이하는데 적격인 인물로 뽑힐 정도로 중국통이였는데, 1606년 5월12일 의주에서 의주부윤이 중국사신과 조선관리들을 위해 전별연을 베풀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영은 내(허균)가 돌아본 일이 있는 창기(娼妓)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끌어내어 앉히니 30여 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는 진짜가 아닌 사람이 여섯 명이 끼어 있으니 더욱 우스웠다.”

또, 1608년 4월 7일에는 “양행(兩行 유 태감 원접사와 웅 대행 원접사 일행)은 모든 관원을 대동하고 교외(郊外)에서 칙서를 맞는 예를 행하였다. 성으로 돌아오는데, 구경하는 남녀로 성곽이 꽉 찰 지경이었다. 여인(汝仁, 이재영李再榮)은 내 곁에 있다가 길가의 여자들 중에 부(府)의 창기(娼妓)들이 모두 나와 줄지어 꿇어앉아 인사하는 것을 보았다. 여인이 헤어보니 내(허균)방에 들어온 일이 있던 자가 12명이었다. 나는 시를 지어 자조(自嘲)하였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런 그가 당대 조선 최고의 기녀였던 이매창과 종일토록 술잔을 놓고 시를 읊었음에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니..., 허균의 그동안의 행동으로 볼 때 믿기지 않는 일이다. 왜 그랬을까? 위의 기록에서처럼 이매창이 시원치 않게 생겨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허균은 시원치 않게 생겼더라도 재능 있는 기녀를 아꼈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보다는, 종일토록 술을 놓고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읊었다면, 매창은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1563~1589)의 시 한두 편쯤은 읊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허균에게는 그런 이매창이 누나의 모습으로 오버랩 되어 떠올려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넌설헌은 8세 때 '광한전백옥루 상량문'을 지을 정도로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은 불행의 시작이 된다. 열다섯에 안동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결혼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다 연이어 딸과 아들을 모두 잃게 되고, 사랑하는 오빠(허봉)는 졸지에 객사하고 동생(허균)마저 귀양 가는 등 불행이 겹친다. 결국은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허난설헌은 죽기 전에 평생토록 지었던 시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다만 허균의 기억력이 매우 뛰어났으므로 평소에 외웠던 누나의 시들과 친정에 남아있던 시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허균은 이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 사신들에게 전해 주어 중국에서 허난설헌 열풍을 일으켰다. 요즈음 유행하는 ‘한류열풍’의 원조는 바로 허난설헌인 셈이다.

이처럼 허균은 누나와 정이 두터웠다. 불행한 삶을 살다가 요절한 누나의 시재를 아꼈던 것이다. 그런 허균은 천성이 고고하고 개결하여 음란한 것을 즐기지 않고 시에 능한 이매창을 통해 어쩌면 누나를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평생 동안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어지러운 지경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밤에는 계생의 조카를 침소에 들였으니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이다.“는 대목에 혐의가 간다. 누가, 어떤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일까. 매창이 첫사랑인 유희경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아니면 김제군수였던 이귀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아니면 허균이 두 사람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그 당시 이매창은 첫사랑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936)과 헤어져 있었다. 이매창이 유희경을 처음 만난 해는 1591으로 본다. 유희경은 오십을 앞 둔 노총각,  이매창은 열여덟 살 때로 허균과 이매창의 만남 1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매창과 유희경의 만남은 짧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의병대열에 합류해 전쟁터로 떠났다. 유희경이 전쟁터로 떠나면서 매창과의 ‘백년해로’의 기약은 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국가의 기본을 예의범절에 담으려 했던 사람이다. 그랬다면, 그는 그 약속을 지켰을 것이라 믿어진다.

다만 짧은 만남이었기에 서로는 더 애틋해한 듯하다. 이매창의 대표 시 '이화우(梨花雨)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는 유희경과 헤어진 뒤 그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라고 한다(가곡원류).

유희경은 늦게야 가정을 꾸려 아들, 딸 낳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유희경은 매창을 그리워 했다. 첫만남 15년 후인 1607년 이매창과 재회한 적이 있고, 매창이 죽었을 때는 몹시도 슬퍼했음을 그가 전하는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화우 흩날릴 때 매창과 이별한 자는 과연 누구일까?하고 허균은 생각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허균은 유희경이 매창의 정인임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의 문집(성소부부고 25권)에는 “유희경(劉希慶)이란 자는 천례(賤隷)이다. 사람됨이 청수하고 신중하며 충심으로 주인을 섬기고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니 사대부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가 많았으며 시에 능해 매우 순숙(純熟)했다.”고 짤막하게 소개했을 뿐이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유교적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던 허균으로서는 별로 마음 쓰지 않았을 것이다.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아마도 이귀의 혐의를 피하고 싶었을 가능성이 크다. 매창이 이귀를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매창의 시 어디에서도 이귀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허균의 기록에서 ‘매창은 이귀의 정인이다’는 한 대목이 보일 뿐이다. 기록으로 보아 매창은 이귀에게 마음까지 주지는 않은 듯하다. 그보다는 이귀의 강개한 성격 때문일 수가 있다. 이귀가 누구인가? 허균이 ‘조선이 기피한 인물 1호’라면, 이귀는 ’조선의 싸움꾼 1호‘로 보아도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서인의 공격수였던 이귀는 선조, 광해군, 인조대를 통틀어 탄핵상소를 가장 많이 올린 조선 최고의 싸움꾼이다. 그런가하면 인조반정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인조반정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다. 이매창도 그랬겠지만, 허균도 어쩌면 그런 싸움꾼 이귀와 부딪치기 싫었을 수가 있다.

/허철희/huh@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