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면 청림리 청림마을 (신)청림사터ⓒ부안21


변산노비도적 정팔용 이야기
[부안역사문화기행]이인좌의 난과 청룡대장 정팔룡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붕당정치의 폐단은 극에 달했으며 정권장악과 유지를 위해 피나는 살륙이 사대부들 간에 자행되었다. 이에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졌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꾸어보자는 밑으로부터의 변혁운동이 꿈틀거렸다. 영조4년(1728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은 이러한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대부들간의 권력 투쟁에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고자 거병했던 이인좌의 난에서 이들이 준비했던 군사력의 주력부대는 변산의 노비도적 출신인 정팔용이 이끄는 부대였다. 이인좌의 난과 변산노비도적 정팔용에 대해 알아본다.

사림파의 정권 장악과 붕당정치

고려말에 권문세족이라 불리는 지배층의 부패는 극에 달했다. 공민왕의 개혁정치는 실패하였다. 이 때 나타난 세력이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흥사대부였다. 이들은 사회개혁을 주장했으나 방법론에 있어서 둘로 갈라졌다. 강경파와 온건개혁파로 나뉜 것이다.
강경파인 정도전, 하륜, 권근, 조준 등은 새로 등장한 무장인 이성계를 내세웠다. 이방원은 반대파를 간단히 제거하여 버렸다. '동방 이학(理學)의 조(祖)'라는 정몽주를 타살한 것이다. 이들은 마침내 이색, 길재 등 온건파를 누르고 역성혁명을 성공시켰다.
권력을 잡은 신흥사대부들은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수많은 공신(功臣)을 양산해내며 부와 권력을 독차지했다. 이들이 훈구파이다. 한번 공신에 책봉되면 공신전과 노비가 지급되며 자자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이어갔다. 또한 과거에 떨어져도 벼슬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를 조상의 음덕으로 관리에 서용된다 하여 '음서(陰敍)'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이들 훈구파는 점점 부패해지고 한정된 벼슬자리를 두고 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극렬해졌다.
한편 중소 지주층으로 지방에 거점을 둔 온건개혁파들은 향촌에 머물며 후학양성에 전념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사림파이다. 이들이 관직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성종 때에 와서의 일이다. 성종은 깨끗한 사림파로 하여금 훈구파를 견제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훈구파와 사림파 간에, 때로는 훈구파간에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있었다. 중종, 인종, 명종 치세에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 4대사화가 있었다. 그러나 선조 때에 와서는 사림파가 확실하게 권력을 잡게 되었다.

분화를 거듭하는 사대부들

80년대 군부독재 타도를 외칠 때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하나였듯이 훈구파와 권력 투쟁을 벌일 때 사림파는 하나였다. 그러나 권력을 잡게 되자 사림파는 분열되었다. 선조 7년(1574년) 이조정랑 자리를 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며 붕당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사림이 분당되기 전에 이를 예언한 인물이 있었다. 동서로 분당되기 4년 전인 1571년 영의정이었던 이준경은 사망하기 직전 임금에게 유차를 올려 이렇게 직언했다.
“지금의 벼슬아치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붕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대단히 큰 문제로 나중에 반드시 나라의 고치기 어려운 환란이 될 것입니다.”
선조 17년(1584년) 동·서인 융합에 힘쓰던 율곡 이이가 사망하고 선조 23년 세자 건저문제(建儲問題)로 서인이 실각하자 정권을 잡은 동인은 정철의 치죄문제를 두고 온건파인 남인과 강경파인 북인으로 분열되었다.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을 겪고 나서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치열한 정쟁을 벌였다. 개혁군주였던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많은 의병장들을 배출한 북인을 중용했다.
조선은 왕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사대부들은 왕도 사대부의 일원으로 보았으며 사대부들간의 권력다툼에 왕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권력을 잡는 길은 왕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왕을 강제 퇴위시키고 자신들의 왕을 내세웠다. 북인들이 정권을 잡자 서인은 남인과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광해군을 퇴출시켰다.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이 바로 그것이다.
명나라와 청나라와의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이 물러나자 조선의 외교 정책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우선하고 청나라는 ‘오랑캐’라고 배척하면서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인조와 효종 때에는 서인들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효종이 죽자 그 때까지 살아있던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3년 동안 입어야 하느냐 아니면 1년 동안 입어야 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일어났다. 이를 예송논쟁이라 하는데 3년복을 주장하는 남인당과 1년복을 입어야 한다는 서인당이 서로 맞서 치열한 권력 다툼으로 발전했다.
2차 예송에서 승리한 남인들은 서인들의 처벌문제를 놓고 강경파인 청남과 온건파인 탁남으로 분열됐으며 다시 서인이 집권하자 서인은 남인들을 대하는 견해가 갈려 소론과 노론으로 분열됐다. 소론의 영수 윤증(1629~1714)은 서인이면서도 서인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남인과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소론이 만든 임금 ‘경종’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갈려 환국과 재환국의 격변이 일던 숙종의 47년 치세가 마감되고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즉위하자 소론과 노론은 장희빈 문제로 부딪쳤다. 소론이 지지하고 보호했던 세자가 왕이 되었으니 왕의 생모인 장희빈을 신원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권당은 아직 노론이었다. 노론은 경종의 이복동생인 연잉군(후일 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는 일을 관철시켰다. 왕위를 이을 왕세자를 책봉하는 일은 왕실 안정에 필수적인 일이었다. 임금의 동생이 후사가 되는 왕세제(王世弟)는 비상시국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은 후 형인 정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왕세제로 있다가 즉위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노론은 이처럼 무리한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을 도모했다.
자신들이 내세운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시키는데 성공한 노론은 경종이 병약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대리청정을 주장했다. 이에 경종은 주요관직에서 노론을 퇴출시키고 소론을 대거 등용했다.
정권을 잡은 소론은 노론에 대한 보복을 단행했다. 노론 4대신인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이 유배됐고 세제 책봉 과정과 대리청정 과정에 관여한 노론 50여명이 사형, 유배, 삭탈관직 등의 처벌을 받았다. 이를 신축옥사라 부른다. 1722년의 일이었다.
실권을 장악한 소론은 기세를 모아 노론 척결에 나섰다. 영수 김일경(金一鏡) 등이 목호룡(睦虎龍) 등을 시켜 노론이 삼수역(三守逆:경종을 시해하기 위한 3가지 방법, 첫째 자객을 왕궁에 들여보내 왕을 시해하는 방법, 둘째 음식에 독약을 타서 왕을 죽이는 방법, 셋째 왕의 전교를 받아 경종을 폐출시키는 방법)까지 꾸며 경종을 시해하려 하였다고 고변하였다. 이 고변은 크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간들은 모두 4대신의 극형을 주장했다. 경종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사헌부 지평 박필몽은,
“오늘밤을 지새는 한이 있더라도 4대신의 정형을 윤허하지 않으시면 물러나지 않겠사옵니다.”
라고 간쟁했다. 결국 이미 유배를 떠난 노론 4대신을 비롯한 60여 명이 처형됐고 노론 170여 명은 유배 또는 문초를 받았다. 이를 임인옥사라 부른다.

경종 독살설과 이인좌의 거병

조선의 20대 왕 경종은 재위 4년 2개월 만에 사망했다(1724년). 서른여섯의 한창 나이였다. 그는 줄곧 병약했음이 확인되고 있고 사실상 후사를 낳을 수 없었다. 선의왕후 어씨가 종친의 자제를 왕자로 삼으려 했던 데에서도 이는 확인되고 있다. 노론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한 소론에게 경종의 죽음은 청천벽력이었다. 경종 독살설은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영조 즉위 초는 소론과 노론이 정권을 나누어 가졌지만 결국 신축년과 임인년의 사화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소론 이조판서 김일경과 남인 동지중추부사 목호룡이 처형되었으며 다시 노론이 득세했다. 소론은 두려움에 떨었으며 노론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러나 영조는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 생각하고 ‘원흉 5적’을 죽이자는 노론의 요청에 불응하고 네 대신의 관작을 추탈하거나 파직하는데 그쳤으며, 그나마 소론 영수 이광좌는 아무런 처분도 받지 않고 무사했다. 영조는 거듭되는 노론의 탄원을 무시했다. 영조 자신은 노론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지만 상대 당에 대한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 정권이 안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급기야 소론을 끝내 죽이기를 요청하는 노론 관료 140명을 일거에 축출하고 소론 영수 이광좌를 영의정, 조태억을 좌의정에 임명하는 등 정권을 소론으로 바꾸어버렸다. 이를 정미환국(1727년)이라 부른다. 이때 등용된 소론은 대부분 온건파로 이들을 ‘완소(緩少)’라 한다.
이는 보복의 악순환을 단절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소론이 재집권한지 1년이 채 안되어 소론 정권의 좁은 입지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영조 4년 (1728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일명 무신란)’이 그것이다.
이인좌의 난이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은 5년 전 경종의 죽음에 있었다. 젊은 경종의 급작스런 죽음은 소론의 몰락에 그치지 않고 전국에 많은 소문을 유포시켰다. 경종의 죽음으로 타격을 입은 소론에서 고의적으로 유포시킨 소문도 있었을 것이다. 경종의 왕비였던 단의왕후 심씨의 동생이었던 심유현은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선왕께서 무슨 병으로 승하했냐고 묻는 친구 이유익의 물음에,
“내가 급히 부름을 받고 환취정에 들어가 보니 임금께서 얼굴빛은 여전하신데 환관 한 사람이 곁에 있고 대신들이 와서 초혼(招魂)하기를 청하더군.”
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경종이 병이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죽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위 두 사람은 박필현 등과 함께 경종의 사인에 대한 의혹을 세상에 전파시켰다. 이는 영조와 노론의 정통성에 타격을 주었다. 경종이 평소에 병이 있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으나 소문은 그치지 않고 삼남지방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도성에서도 경종이 독살됐다는 벽보가 나붙기도 했다.
이런 소문이 널리 퍼진 사실은 당시의 흉흉한 민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정권 싸움만 하느라 백성들의 생활을 돌보지 않으므로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졌으며 사회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경종의 죽음을 계기로 표출된 것이다. 숙종22년(1696년)에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장길산의 난이 일어난 것을 보면 당시에 더 이상 학정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유리걸식하다 ‘녹림당’에 들어간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3년(1727년) 10월 20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남쪽 지방에 적환(賊患)이 치성하여, 근래에는 부안(扶安)의 변산(邊山)에서 적도(賊徒)들이 많이 몰래 점거(占據)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낮에 장막(帳幕)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노략질을 하고 있는데, 변산(邊山)에 있는 큰 절에 적도들이 들이닥쳐 절의 중을 불러서 말하기를, ‘삼동(三冬)에는 밖에서 거처할 수 없으니 너희들이 우선 절을 빌려주어야 하겠다.’ 하자, 중들이 두려워 감히 따지지 못하고 모두 눈물을 흘리고 흩어져 갔다고 합니다. 남쪽에서 온 사람이 호남어사(湖南御史)의 말을 듣고 와서 이런 사실을 자자하게 전하였습니다. 전주(全州)의 영장(營將) 전순원(全舜元)은 도적을 금하는 행정(行政)이 너무도 소활(疏闊)하니, 개차(改差)하소서.”
영조4년 무신년 초에 서울 서소문과 종로, 기호지방 등에서 괘서사건이 발생하고 부안 변산의 노비도적들이 서울로 쳐들어온다는 소문으로 민심이 흉흉해지면서 피난 가는 사람들도 나타났다고 한다. 이 때 소론 강경파인 준소(峻少)와 남인 소속인 이인좌, 정희량, 조성좌, 박필현, 남태징, 심유현, 김중기, 이유익 등의 인물들이 거병을 준비하고 특히 이인좌는 자신의 모든 노비 약1,000여 명을 방역하고, 관곡을 풀어 굶주리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민중의 호응을 얻었다.
이들이 역모를 일으킬 것이라는 최규서의 고변이 있었다. 이 고변은 사실로 판명이 났고 고변 직후 소론 강경파 이인좌가 군사를 일으켰다. 이인좌는 스스로 대원수라 칭하고 상여에 무기를 감추고 청주성에 진입하여 충청병사 이봉상과 군관 홍림, 영장 남연년 등을 죽이고 청주성을 점령했다. 이들이 이처럼 신속하게 군사를 일으킨 것은 경종이 죽은 다음해인 1725년부터 불만이 팽배해 있던 소론이 쉽게 동조자를 규합하면서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청주성을 장악한 이인좌는 여러 읍에 격문을 보내 군마를 모집했다. 충청도에서 이인좌가 궐기하자 각지에서 이에 동조하는 거사가 잇따랐다. 남인의 근거지인 영남에서 이인좌의 동생 이웅보, 정희량 등이 거병하여 안음과 거창을 함락시켰고 전라도에서는 태인현감 박필현이 중심이 되어 박필몽과 함께 거병했다.
특히 영남에서는 안동의 유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유림들이 거사에 동조했는데 주동자 이인좌는 세종대왕의 11대 손으로 선조 때의 재상 이준경의 후손이었다. 이인좌의 고모부는 윤선도의 후손인 윤흥서로 공재 윤두서(정약용의 외조부)의 형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준경은 이이를 중심으로 한 붕당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한 인물이었다. 이준경이 탄핵받을 때 남인의 영수가 되는 유성룡이 옹호했던 일 때문에 영남에서 이준경은 명재상으로 추앙받고 있었으며 사형당한 남인의 영수 윤휴의 손자사위였다.

변산노비도적 청룡대장 정팔용

부안지역에서는 정팔용(鄭八龍), 고응량(高應良, 풍천부사 고희高曦의 현손)․효점(効點), 김수종(金守宗)․수형(守亨)․수채(守采), 성득하(成得夏) 등이 이 난에 적극 동조했다. 이인좌는 무신란 2년 전(1726년)에 경기도 지역 과장에 무단으로 들어간 죄로 부안으로 발배(發配)되었는데, 이때 부안지역 부호인 고응량, 김수형, 노비도적 정팔룡 등 변산세력과 접촉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태인현감 박필현․담양부사 심유현 등과 함께 전주성 입성을 계획했다.
특히 무신기병의 가장 핵심세력이었던 부안 변산부 노비도적(奴婢盜賊) 정팔용은 거사군 제1대장이 되어 부안의 청림사(靑林寺)에 근거지를 두고 삼남(충청, 전라, 경상)지역의 청림병(靑林兵)을 지휘했기 때문에 그를 청룡대장(靑龍大將)이라고 했으며, 새로운 시대를 예언한 비결서인 정감록에 나오는 정도령(鄭道令)이라 칭하면서 세력을 규합했다.
최규서의 고변이 없었거나 조금 늦어 이인좌가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더라면 반란을 쉽사리 진압하지 못하고 전국토가 전장화하는 내란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인좌가 거병을 하자 영조 임금은 예상을 뒤엎고 이삼을 훈련대장에 임명했다. 그는 1722년 임인년에 목호룡 고변사건을 맡아 노론을 숙청할 때 포도대장이었던 전력으로 노론의 공적 1호였다. 그는 소론 영수로서 병조판서에 임명된 이광좌의 지시를 받아 일처리를 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한다.
이 사건으로 수천 명이 희생되고, 공주 동학사 등이 소실되는 등 큰 참화를 남겼다. 태인현에서 거병한 박필현은 전주성 입성이 실패로 끝나자 상주로 도피했으나 상주 영장 한속에게 사로잡혀 곧바로 처형되었다. 박필현의 사촌형인 박필몽은 박필현의 군중으로 가 서울로 진군하려 하였으나 도중에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곰소 앞바다 죽도(竹島)에 숨었으며, 검모포(黔毛浦)로 가 잔당들과 다시 거사하려다가 무장현감 김몽좌(金夢佐)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박필현의 기병에 참여한 태인현이 폐현되지 않은 것은 영조 임금의 생모인 최숙빈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양성․용인의 녹림당(도적) 우두머리인 정세윤은 박필현 이인좌와 함께 호남 기병을 성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인물이다. 그와 직접 연결돼 있던 부안의 김수종이 3월15일 고효점에게 고부군 평교(지금의 부안군 백산면 평교)에서 취회를 하도록 지시하여, 성득하, 고응량, 김일채(金一采)와 김수종, 박창한, 김창수, 임진량 등이 모군한 50~60명이 평교에 모였다. 정세윤과 그의 종사관 원만주는 직접 부안의 김수종 집에 가서 거사를 기획했는데, 먼저 부안을 함락하고 전주에서 집결한 후 소사(경기도) 또는 청주로 진격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거의(擧義)에 대한 고변이 각지에서 올라와 위중하니 청주로 빨리 올라오라“는 이인좌의 편지가 급하게 정세윤에게 전해져, 정세윤과 원만주는 평교 취회 전에 부안에서 청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수종, 성득하, 고응량, 고효점, 김일채 등과 태인현감 박필현 상호간의 소통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부안 점령도 성공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만치, 나승대, 나두동의 나주기병도 좌절되고 말았다. 정세윤은 세 번이나 호남을 다녀가는 등 힘을 쏟았지만, 이렇게 나주, 담양, 부안 등지의 무장봉기도 실패하고 말았다.
부안의 주모자 고응량은 1728(영조4)년 6월17일 군기시 앞길에서 그의 삼촌인 고효점과 함께 능지처사되었다. 그 전에 고응량의 공초를 보면
“올해 2월에 성득하가 그 무리의 장사 두 사람과 함께 와서 나흘 묵고 고부군에 같이 가기를 청하여 내가(고응량) 따라 갔는데, 같이 간 자는 진사 김수종, 진사 박창한, 진사 김창수, 파총 임진량 등이고 장사 세 사람이 괴수였다. 함께 평교에 가니 모이기로 약속한 태인현감 박필현의 군사와 나두동의 사위인 진주목사 신후삼의 군사가 모이지 않아서 곧 헤어져 돌아왔는데, 변산 적(賊)에 관한 말은 맥락이 있다. 김수종은 가세가 넉넉하고 종이 많으며 변산 아래에 있다. 박필현이 예전에 50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김수종의 집에 모였고, 박필몽이 무장에서 재차 수십 명을 거느리고 배를 타고 가서 검모포에 배를 대고 김수종의 집에 모여 모의했다.”
김수종은 김수형, 김수채처럼 처형되지 않고 1728년 6월~1729년 6월까지 전라감영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는데, 이는 김수종이 노론인 우참찬 도암 이재(陶菴 李縡)와 노론의 명문가인 박태관(朴泰觀, 박필현의 7촌 아재) 문중과 오랫동안 친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김수형에 대해 『영조무신역옥추안』의 기록을 살펴보면
“김수종의 6촌 동생인 김수형은 배 10척을 소유하고 있었고, 노복(奴僕) 60여 호(戶)가 조선소가 있는 검모포 주위에 살고 있을 정도로 거부였는데, 정팔용이 한때 그의 집에 거주했다. 김수형은 그의 노비인 재인(才人)과 선공(善工)을 시켜 전주 및 삼례장터에 괘서를 붙이도록하고, 노비 천만(千萬) (경상도 진주 부호인) 이덕일의 노비 백세에게는 (전라도)여산 등지를 다니면서 큰 소리로 괘서의 내용을 외치도록 했다.”
변산의 9천 노비군 대장인 정팔용(당시 34세)은 본래 전라도 운봉(雲峰) 사람인데, 거사가 실패하자 지리산 등지로 숨어버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불타버린 청림사(靑林寺)

상서면 청림리 청림마을은 쇠뿔바위(牛角峯) 서쪽 아래에 자리한 마을로, 뒤로는 새재 구시골, 지장암, 의상봉이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내변산 산간마을 중에서는 가장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다. 청림사는 마을 뒤편 산기슭의 경사면을 깎아서 남쪽에 석축을 한 남향의 절터로서 석축 일부가 지금도 양호하게 남아 있다. 마을 한 가운데 길가에는 묘 한 기가 있는데 이곳에 예전에 탑이 서 있었다하여 지금도 ‘탑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마을 남쪽 개울가를 ‘부돗거리’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마도 지난날 청림사의 부도가 있었던 자리로 여겨진다. 옛날 청림사가 한창 번창하였을 때는 이 마을 입구의 큰길 거리에 ‘중장(僧市)’이 섰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 절터에서 내소사고려동종(보물 제277호)이 출토되었다. 종신에는 고려 고종 9년(1222) 6월에 장인 한중서(匠人 韓仲叙)가 주조하여 당시 부령(부안의 옛 지명)에 있는 청림사의 종으로 달았다는 명문(銘文)이 있다. 이곳에는 지금도 상당수의 기와조각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중에는 ‘靑林寺’란 명문(銘文)이 있는 것도 습득되었다고 하며, 습득된 기와조각들의 상당수가 불에 탄 흔적이 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청림사는 늦어도 고려시대에 세워졌으며, 이인좌의 난 때 관군의 공격을 받아 불타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부안의 향토사학자이신 김형주 선생은 그의 저서 <부안의 땅이름, 마을이름>에서 “1728년(英祖 4) 3월에 역적들의 소굴이 된 청림사(靑林寺)가 관군들의 습격을 받아 소실되었다.”고 단정하고 있다.

맺는 말

근래에 이인좌의 난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권인호 교수(대진대)는 1995년에 발간한『조선중기 사림파의 사회 정치사상』에서, “노론(서인)과 외척의 세도정치가 민중을 외면하고 지역차별까지 겹치자, 홍경래의 난과 진주농민항쟁 및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는데, 무신란은 이를 촉발시킨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국사편찬위원회는 1994년 발간한『영조무신역옥추안』해제에 “무신란은 조선후기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의 모순에 의하여 일어난 의리(義理) 명분논쟁의 한 양상이면서 동시에 대규모적인 권력투쟁의 표출이었다.…아무튼 무신란의 역사적 성격은 조선후기 정치체제와 권력구조가 지니고 있던 모순에 의하여 일어난 소외계층의 변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4년 3월 23일 기록에 “이인좌 군사는 각처의 토적(土賊)과 청주진(淸州鎭)․목천 등 고을의 마병(馬兵)과 금어군(禁禦軍)으로서 정예한 자를 뽑아 장사치와 거지 차림을 하여 피난민 가운데 섞여 경기도 안성(安城) 청룡산 속에 모여 있었으며, 산 아래 촌락이 거의 적의 소굴이 되어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고하는 자가 없다”는 것에서도, 광범위한 민심이반과 함께 소외계층의 무신란 참여 실상을 알 수 있다.
무신란 때 거사군들은 “한 사람의 백성도 죽이지 말고(不殺一民), 재물을 빼앗지 말며(不奪民財), 부인들을 겁탈하지 않는다(勿怯婦人)”는 행동강령을 채택했으며, 가장 중심적인 세력은 변산반도와 지리산 등지의 소외계층인 천민층(賤民層)이었다. 『영조무신역옥추안』등에는 부안 변산의 정팔용 등 노비도적 9천 명과 지리산의 박필영 및 구례 연곡사 승(僧) 대유(大有) 등 연곡사․쌍계사․화계사를 거점으로 승려 출신인 정읍의 송하(宋賀)와 연계한 명화적 약 20,000명이 무신란에 참여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또한 저변층에서 나타난 저항의식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1728년 무신봉기와 300년 차별』의 저자 조찬용은 ‘이인좌의 난에 대한 소고’에서 “연암 박지원(1737～1805)의『허생전(許生傳)』에서 허생이 변산 노비도적과 무인도를 개간하여 이상국가를 건설하는데, 이는 1728년 무신사태 때 참여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으나 무신사태 실패로 좌절한 소외계층인 정팔용 등 부안 변산 노비도적을 소설화한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박지원의 祖父벌 되는 박필현․필몽 등이 무신사태 때의 핵심적인 인물로서 처형되었던 가문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고 적고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무신란의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의 정치상황에 의해 일어났지만, 실제 양상은 당시의 사회 및 경제적 조건하에 나타난 중인, 상인, 양민층, 하층민 등의 다양한 저항형태를 총체적으로 표출시킨 사건이었다.
비록 부안의 큰 문화자산인 청림사는 불타 없어졌지만 청림사가 도적들의 소굴, 역적들의 소굴이 아니라 하층민인 백성이 왕권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세상을 바꿔보려고 일어난 변산 노비도적 정팔용이 이끄는 무신기병 청림병들의 의거지(義擧地)로 재평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참고문헌
『영조무신역옥추안』-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1728년 무신봉기와 300년 차별』-조찬용

/허정균 huhjk@buan21.com


<부안이야기 8호 기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