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제법성지ⓒ부안21



"변산구곡로에 석립청수성이라"
변산에서 삶의 지혜를 묻다3-언불교제법성지

그렇다, 무무역무무에 비비역비비라. 원불교의 대종사 소태산 박중빈(1891-1943). 그이를 통해 변산은 근대의 지혜를 열어나간다. 변산은 소태산이 5년간 기거하며 교법을 반포하고 교단 초기 인연들을 만난 제법성지(制法聖地)이다. 교법을 반포한 봉래정사(蓬來精舍)는 변산면 중계리 옛 실상동 즉 변산반도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변산성지는 석두암터, 석두암 일원대도비, 실상사 초당터, 봉래구곡, 월명암, 쌍선봉, 정산로 등이 있다.

소태산의 변산 수양시절에 출현한 실지불공 이야기는 원불교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실화이다. 소태산은 사람들이 아무 정(情)이 없는 불상에 비는 행위를 비난하곤 했다. 소태산이 어느날 길에서 만난 노부부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노부부는 며느리가 시부모 말을 안듣는지라 실상사에 불공드리러 간다고 했다. 그러자 소태산은 "두 분은 생명이 없는 등신불에게는 불공을 드릴 줄 알면서 살아 있는 부처에게는 왜 불공을 드리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노부부가 이 말에 놀라자 소태산은 다시 "며느리가 바로 살아 있는 부처입니다. 바로 이 부처에게 공을 들여야지 등신불에게 불공을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두 분께 효도하고 불효하는 직접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바로 며느리이기 때문입니다"고 대답했다. 노부부가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다시 묻자 소태산은 어차피 불공에 들어갈 돈을 한 달 동안 며느리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다 주라고 했다. 노부부는 그 말대로 하자 며느리가 한 달 만에 완전히 개과천선했다고 한다.

변산 봉래구곡의 봉래곡에는 너럭바위 위에 "蓬來九曲"이라는 명필 각자(刻字)가 새겨져 있다. 소태산은 제자들에게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닫은 사람이라 하며 다음과 같은 선시를 읊었다.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라" 원불교출판사에서 발행한 <원불교 대계>를 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변산의 아홉 구비, 구비 구비 아름다운 물길이여 / 무심한 저 돌멩이, 흐르는 물소리에 홀로 흥겨워 / 없고 없어라, 없다는 것도 또한 없고 없어라 / 아니고 아니어라, 아니라는 것도 또한 아니고 아니어라." 이것은 마음공부를 잘해서 성리를 깨쳐가는 방법으로서, 특히 무무역무무/비비역비비의 앞 무무는 이 세상의 형상있는 것들에 속거나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며, 뒤 무무는 그렇다고 해서 형상없는 것들에 속거나 집착해서도 안된다는 것이고, 앞 비비는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뒤 비비는 때로는 분별시비를 다 놓아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부사의인가. 혼탁한 세상에 삶의 지혜는 더 밝게 빛날 터인즉, 변산에 묻힌 지혜를 캐내는 그 길을 차라리 묻고 또 묻자.

<끝>


/고길섶/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