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의방장에 오른 필자ⓒ부안21






"일봉래(一蓬萊) 이방장(二方丈)과 삼영주(三瀛洲) 이 아니냐"
변산에서 삶의 지혜를 묻다1-부사의방장


주지하다시피 변산은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월명암에서든 변산해변로에서든, 바다와 산이 마주치는 일련의 풍광들은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넉넉한 자태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변산의가치는 자연경관에서만 찾을 일이 아니다. 변산은 국립공원이다. 자연적 가치에만 주목하는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적 존엄성은 사라져버린 듯 하다. 예로부터 변산은 봉래산이라는 이름으로 고부의 두승산(영주산), 고창의 방장산과 함께 전라도의 삼신산 중 하나로 일컬어왔으니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믿음이 형성되어 왔다. 신령에 의존하여 인간 세속의 안녕을 기원했으리라. 이제 우리는 변산이 영산(靈山)임을 기억하자. 

판소리 단가를 보자. “만고강산(萬古江山)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봉래(一蓬萊) 이방장(二方丈)과 삼영주(三瀛洲)이 아니냐. 죽장(竹杖) 집고 풍월 실어 봉래산을...”, 이렇게 시작한다. 만고강산 유람할 때 자연경관을 앞세우지 않고 삼신산을 앞세워 찾아다닌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영원회귀할 변산 본래의 모습, 그것은 영산 곧 성소(聖所)로서의 의미가 깊다. 이것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자면, 인간 세속의 지혜가 숨겨진 곳이 아닐까, 이렇게 상상해본다. 아마 그러하리라, 그 오래된 역사들 속에 묻혀 있으나, 보이지 않고 숨을 쉴 수 없게 되었으니, 변산의 시련이라, 속세의 시련이 아니겠는가. 

아뿔싸, 인간의 접근을 막고 있어, 부사의라니! 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 아래 천여 년의 풍진세월을 지켜 온 부사의방장에서 그 뜻을 헤아려보니 어린 속인들이야 차라리 일거에 심신을 확 트이게 해주는 경관으로 시선을 돌리는 까닭이 여기 있지 않은가.‘부사의(不思議)’란 ‘세간(世間)의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음’이란 뜻이렷다. 원효, 의상, 진묵, 진표 등 출중했던 옛 고승들도 헤아려 알고자 왔건만 세상은 있으되 답이 없이 오늘에 이르렀나보다. 헤아려 알 수 없으니 오리무중이라, 그러나 안이할 일이다. 세간살이 자체가 이미 곡학아세에 혹세무민, 오리무중에 첩첩산중이라, 현대어로 말하자면 부조리가 아닌가. 인간해방의 혁명적 실천을 기획한 저 유명한 칼 맑스에 따르면, 인간은 답이 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헤아리고 또 헤아려, 세간의 답이 부사의방장에 있을 터이니 벼랑수행하는 마음으로 그곳에라도 한번 찾아볼 일이다. 스물일곱살 때 찐 쌀 스무말을 짊어지고 올라가 다섯 홉을 하루 양식으로 삼고 그 중 한 홉은 다람쥐에게 나눠주며 수행했다는 신라 고승 진표의 벼랑수행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으려나.

“부싯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향을 피우고 율사의 진용에 예를 갖추었다. 율사의 이름은 진표, 벽골군 대병촌 사람이다. 나이 12살에 현계산(賢戒山) 불사의암에 거처하였으니, 현계산이 바로 이 산이다. 마음을 재우고 가만히 앉아 자씨(慈氏, 관세음보살의 별칭)와 지장(地藏)보살을 보고자 하였으나, 몇 날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는지라, 이에 몸을 절벽 아래로 던졌더니, 두 명의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손으로 받들어 말하기를, ‘사(師)의 법력(法力)이 작기 때문에 2성(聖)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하였다. 이에 더욱 부지런히 노력하여 21일이 되자, 바위 앞 나무 위에 자씨와 지장보살이 몸을 나타내어 계(戒)를 주고, 자씨는 친히《점찰경(占察經)》 2권을 주고, 또 아울러 199생(栍)을 주어 가르치는 도구를 삼았다. 그 방장은 쇠줄로 바위에 못을 박았기 때문에 기울어지지 않는데, 일반에 전하기로는 바다의 용(龍)이 그렇게 한 것이라 한다(이규보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중에서).”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고길섶/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