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면 지서리-새해아침ⓒ부안21



새해, 새아침, 새하얀 세상
'제구포신(除舊布新)'

2012년을 두고 전국의 교수들이 뽑은 한해의 사자성어가 "거세개탁(擧世皆濁)"이었다.지위의 높고낮음을 막론하고 모든사람이 다 바르지않음을 일컫는 말이다. 혼탁한 이 시대의 그대로 반영하는 말로 보여 씁쓸하다.

새해의 사자성어로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했다.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것을 펼친다는 뜻이다. 새해 아침 세상은 온통 흰눈으로 덮여 있다. 과연 새 세상이 펼쳐진 듯하다. 그러나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철학, 가치는 무엇일까.

1970년대에 들어서며 우리 사회는 산업화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고도의 성장을 시작할 무렵 미국 MIT 교수들은 '성장의 한계'라는 책을 펴냈다. 1972년에 나온 이 책의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세계인구, 비재생가용자원, 1인당 산업생산물, 1인당 서비스, 환경오염 등 다섯 항목에 대하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예측조사를 거쳐 그것들이 향후 2100년경까지 어떻게 증감 추세를 드러낼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책은 현재의 추세가 그대로 계속된다면 2020∼2050년 사이에 인구, 산업 및 식량생산, 자원공급과 환경오염이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근대적 산업문명 체제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책이 나온지 40주년이 되는 지난 해 3월 미국의 스미소니언 협회라는 유명한 민간 학술문화단체에서 이 책을 두고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저명한 학자, 전문가, 언론인들이 모여 이 책이 40년 전에 예측한 사항들을 점검해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놀랍게도 1970년부터 2000년까지 30년 동안 '성장의 한계'가 예측한 다섯 항목이 실제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예측치가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이 된 것이다.

'성장의 한계'에서 예측한 바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30년이면 감소 추세로 접어든다. 현재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이고 보면 그 이전에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1인당 산업생산도 2020년이면 정점에 이르는데 이는 비재생가용자원의 지속적인 감소에 따른 것이다. 즉 성장을 지탱해줄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은 이미 정점에 도달해 있고 기후변화와 겹쳐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감지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성장의 한계'에서 보여주는 내용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성장이란 틀 속에서 굳어진 여러 사회 체계는 아직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이제 몇십 년 동안 우리사회가 삶의 당연한 전제로 알고 있던 근본 틀이 완전히 달라진 상황을 우리가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많은 사회적인 모순, 비민주적 정치경제, 계층간의 갈등과 대립 등을 경제성장을 통해 완화하거나 해소해 왔다. 그런데 성장이 멈추어진다면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지난 세월에는 파이를 크게 만들어 저소득층에게도 어느 정도 돌아가게 하여 불만을 누그러뜨려왔지만 앞으로 이런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진정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 원칙이 작동해야 사회적 불만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아울러 자연과 공생하며 소박하게 살겠다는 가치를 모두가 공유해야 할 것이며 경제성장의 틀 속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허정균/huhjk@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