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소 사람들에게 개양할미가 빠진 둠벙이 어디냐고 물으면 곰소항 앞에 있는 등대 부근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고창 대섬(죽도) 앞 갯골을 가리키며 “저그가 옛날부터 제일 깊다고 하는 곳인디, 명주실 세 꾸리가 들어 갈 정도로 깊다고들 합디다.” 한다.ⓒ부안21

‘곰소 둠벙 속 같다’
[부안역사문화기행] 부안 말,말,말




부안에는 ‘곰소 둠벙 속 같다’는 속담이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 속내를 알 수 없거나, 말이 통하지 않아 깝깝할 때 더 많이 쓰이는 말로, 그 유래는 개양할미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아득한 옛날에 수성당 옆 ‘여울굴(혹은 당굴)’에서 나와 서해바다를 열었다는 개양할미는 바다의 수심을 재고 풍랑을 다스려 지나는 선박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또 어부들의 풍어를 도우며 칠산바다를 관장했다고 한다.

그런 개양할미는 어찌나 키가 크던지 굽나막신을 신고 바다를 걸어 다녀도 버선도 젖지 않았는데, 다만 곰소 앞바다에 있는 둠벙(계란여)에 이르러 발이 빠져 버선목이 좀 젖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 난 개양할미는 치마에 돌을 담아다 이 둠벙을 메워버렸다고 한다. ‘곰소 둠벙 속 같다.’는 속담은 바로 이 대목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곰소 둠벙은 어디에 있으며, 도대체 얼마나 깊은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그런 둠벙이 있기나 하는 것일까. 그래서 곰소 사람들에게 개양할미가 빠진 둠벙이 어디냐고 물으면 곰소항 앞에 있는 등대 부근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고창 대섬(죽도) 앞 갯골을 가리키며 “저그가 옛날부터 제일 깊다고 하는 곳인디, 명주실 세 꾸리가 들어 갈 정도로 깊다고들 합디다.” 한다. 해방 전에 큰 중국 상선이 그 지점에서 침몰한 적이 있었는데, 인양하려고 물속에 들어가도 얼마나 깊은지 긴 돛대가 안보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런데 곰소 사람들은 ‘곰소 둠벙 속 같다.’는 말을 ‘곰소 앞강 같다.’고 한다. ‘곰소 앞강’은 곰소 앞바다를 이르는 말이다. 줄포만은 변산과 선운산 사이를 뚫고 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바다라기보다는 한 줄기 강으로 느껴진다. 곰소 사람들이 곰소 앞바다를 ‘곰소 앞강’ 또는, ‘곰소강’이라고 부르는 데는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 같은 이 곰소 앞바다가 수심이 보통 깊은 게 아니다. 썰물 때에도 큰 배들이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만 가운데에 갯골이 깊게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곰소 둠벙 속 같다’는 속담이 지어질 법도 하다. 후포‧사진〈줄포〈곰소 등은 이렇게 깊게 발달한 갯골을 따라 생겨난 줄포만의 중심 포구들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뻘이 쌓여 갯골의 수심이 점점 낮아짐에 따라 줄포만의  포구들은 근대 1세기 동안 흥망성쇠의 역사를 거듭 써나가고 있다. 포구로서의 기능이 낮아지는 갯골의 수심에 따라 차츰차츰 바다 가까운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1920년대 이전에 흥했던 후포‧사진항은 줄포항으로, 192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 서해안 4대 항구로 융성했던 줄포항은 곰소항으로, 1961년에서 1987년 사이에 줄포항의 대체어항으로 번창했던 곰소항은 1987년 1종항으로 승격된 격포항으로 그 기능이 옮겨졌다. 

개양할미가 곰소 둠벙을 메운 뜻은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물이 너무 깊어 어부들이 피해를 입을까봐서일 터인데, 어쨌든 수심이 낮아짐에 따라 줄포만 중심 포구기능은 바다 쪽으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가고 있다. 개양할미가 그 거대 막강한 신력을 발휘하여 아득한 그 옛날에 메웠던 곰소 둠벙을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는 없을까? 수심이 낮아짐에 따라 쇠락해 가는 줄포만의 오늘의 현실이 안타까워 해보는 생각이다.

/허철희 huh@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