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실뱀장어/사진 아래: 새만금 물길이 막히기 전 문포의 실뱅장어 배



한밑천 안겨주던 '실뱀장어'

새만금갯벌을 가다(4) 사라져가는 새만금의 생명들-2-실뱀장어

동진강 하구에 위치한 문포나 계화도, 돈지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생물이 또 있다. 어민들에게 한밑천 안겨주던 바로 실뱀장어이다.

뱀장어는 연어처럼 바다와 강을 회유하는 물고기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새끼뱀장어는 바다에서 거슬러 오고, 가을에는 강에서 성장한 뱀장어가 번식을 위해 먼 바다로 나간다. 바다에서 산란한다는 점이 강에서 산란하는 연어와 다르다. 그러나 뱀장어 알이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오랫동안 뱀장어의 번식은 수수께끼였다.

이러한 수수께끼는 20세기 들어서야 비로소 풀리게 되는데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강에 사는 뱀장어의 산란지는 필리핀 동쪽 해역이라는 것이 지난 1991년에야 일본 도쿄대 해양연구소에 의해 밝혀졌다. 이 연구소는 20여 년 동안 태평양 일대를 조사한 끝에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생후 2∼3주된 길이 1㎝ 미만의 뱀장어 치어를 수백 마리 잡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소 츠카모토 교수는 동북아에서 3천㎞ 떨어진 마리아나열도와 필리핀 사이 서북 태평양을 뱀장어 산란장이라고 추정하는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동북아에서 3천㎞ 떨어진 필리핀 부근 번식지에서 갓 태어난 치어는 반년 동안 바다 위에 떠서 북적도 해류와 쿠로시오 해류에 실려 동북아로 이동한다. 이 시기의 새끼뱀장어는 부유생활에 맞게 대나무 잎처럼 납작하고 몸이 투명해 `댓닢뱀장어(렙토세팔루스)‘라고 부른다. 댓닢뱀장어가 부유해 대륙붕과 심해의 경계지역인 대륙 사면에 이르면 몸이 원통형으로 변태하면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해류와 조류를 타고 한반도 서. 남해안의 강을 거슬러 온다. 이 시기의 새끼뱀장어를 실뱀장어라고 하는데, 실처럼 가는 몸의 길이가 이불 꿰매는 바늘 크기인 5~8cm 정도로 자라 있고, 반투명하며 두 눈만 까맣다.

이렇게 강으로 거슬러 온 실뱀장어가 자라 뱀장어가 된다. 뱀장어는 강에서 5~10년 정도 살다가 8~10월경 산란하기 위해 강에서 무려 3천㎞나 떨어진 태평양 한 가운데 자신이 태어난 곳까지 이동해 산란한 후 죽는다. 그리고 그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고 한다. 참으로 신비하고도 장엄한 일생이다.

만경강이나 동진강 하구역은 강으로 거슬러 오는 실뱀장어의 길목이다. 실뱀장어가 회유해 오는 시기인 2월초~4월말까지 이 지역 어민들은 실뱀장어잡이로 천금을 올렸었다. 뱀장어의 산란이 이렇듯 신비의 베일에 가려있기 때문에 뱀장어 양식은 전적으로 이 시기에 강으로 거슬러 오는 자연산 치어의 공급에 의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뱀장어의 가격은 금값이 될 수밖에 없다. 한참 가격이 좋을 때인 ‘97년에는 1kg당 1천만 원을 넘은 적이 있다. 그 당시 금 1kg 가격이 1천2백만 원 정도 했으니까 금값을 호가한 셈이었다. 그래서 한 때 ‘실金장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동진강 하구의 문포나 계화도 사람들은 하룻밤 벌이로 논 한 필지를 살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며 그 때를 생각하면 꿈만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실뱀장어 호시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강을 거슬러오는 실뱀장어 개체수가 급격히 준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수질오염, 기후변화에도 원인은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나라 4대 강은 하구둑, 수중보 등으로 모조리 막혔다. 강다웠던 만경‧동진강마저 새만금으로 막혀버렸다. 실뱀장어의 회유로가 모두 막혀버린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하천마다는 직강화 되었으니..., 실뱀장어가 천신만고 끝에 둑을 넘는다고 한들 마땅한 서식처가 없는 것이다.

유럽산 뱀장어는 이미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었다. 동아시아의 뱀장어도 동아시아 4국(한국, 중국, 일본, 대만)의 특단의 대책마련이 없는 한 유럽의 뱀장어처럼 멸종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허철희 huh@buan21.com

'부안이야기 6호' 기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