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백합/사진 아래: 새만금 물길이 막히기 전 계화도갯벌의 백합잡이



꼭 기억두고 싶은 이름 '백합'

새만금갯벌을 가다(4) 사라져가는 새만금의 생명들-1-백합



사라져가는 새만금의 생명들

백합, 해방조개, 계화도조개, 우즐기, 실뱀장어, 짱뚱어, 대추귀고둥, 바다민달팽이... 우리네 삶을 지탱해 주고, 입맛을 사로잡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안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이들 생명체들... 단 한 컷의 사진으로도 그 모습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농합처럼 기억의 끈을 놓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부안이 꼭 기억해두어야 할 이름들이다.



백합

계화도를 대표하는 생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백합이다. 계화도사람들의 삶을 지탱시켜준 고마운 생물이다.

그런가 하면 백합은 부안을 대표하는 맛이기도 하다. 먼저 크고 잘 생긴 외모부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갈색의 표면은 코우팅이라도 한 것처럼 매끈한데다 ∧∨의 화려한 무늬는 백이면 백 다 다르다. 그래서 ‘백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모양 좋고 때깔만 좋은 게 아니다. 영양 면에서도 으뜸이다. 백합에는 철분, 칼슘, 핵산, 타우린 등 40여 가지의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

백합은 조개류 중에서는 몸집이 큰 편에 속하는 놈으로 어른 주먹만 하게 크게 자란다. 그러나 어린 아이 주먹만 한 중간 크기가 맛은 더 좋다. 백합은 구이로, 찜으로, 죽으로 요리해 먹지만, 날로 먹는 게 맛은 제일 좋다. 백합은 다른 조개와는 달리 육질 속에 뻘이나 흐레가 들어있지 않아 깨끗하다. 육질은 미끈하고 쫄깃한데다 달다. 거기에 특유의 향까지 가미돼 횟감으로는 최고의 맛이다. 비브리오균 경계령이 내려져도 부안사람들은 백합만은 거리낌 없이 회로 먹는다. 백합은 그만큼 깨끗하다. 상한 것을 잘못 먹을 일도 없다.

백합은 입을 꽉 다문 채 겨울철에는 한 달이 지나도 죽지 않고 오래 산다. 역시 조개 중의 조개, 조개의 귀족답다. ‘생합’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렇게 오래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합이 입을 벌리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냉장고가 없던 시절 부안사람들은 백합을 밟고 다니며 먹었다. 백합이 입을 벌리지 못하게 문지방에 놔두고 들며나며 밟아서 자극을 줬던 것이다. 자극을 줄 때마다 더욱 움츠리기 때문에 백합의 수명은 길어진다.

백합은 꼭 새만금(부안의 계화도갯벌이나 김제의 거전갯벌)에서만 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서해와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난다. 그러나 질 면에서는 새만금에서 나는 백합을 따를 수 없다. 양도 이 지역에서 나는 백합이 우리나라 전체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는 백합의 꽤 까다로운 생태적 특성 때문이다. 백합은 육상기원 퇴적물이 유입되는 하구역의 모래펄갯벌을 선호한다. 그런데 전국 대부분의 강들의 하구가 둑으로 막혀 버리다보니 백합은 우리나라 해안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하구 둑으로 막히지 않아 강다웠던 동진‧만경 두 강의 기수역인 부안의 계화도와 김제의 거전에 주로 생존해 있었던 것인데, 새만금 물길이 막히다 보니 백합들은 멸문지화의 변을 당할 운명에 놓인 것이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지역의 자연을 가꾸고, 지역의 산물이나 맛을 브랜드화하고, 문화상품을 개발해 축제로 연결시키는 등, 지역이미지 제고에 몰두하고 있는 마당에 부안은 세계적으로 이미 확고하게 확보한 명품 하나를 잃게 된 것이다.

/허철희 huh@buan21.com

'부안이야기 6호' 기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