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볕이 모든 불순물을 다 말려 줄 것 같습니다.
여름내 축축했던 습기들...무더위에 지치고 힘들었던 날들이 고슬고슬 해집니다.

가을볕만 보면...제 꿈이 살아납니다.
녹색풀들이 흙먼지를 꽉 잡고 있는...먼지 없는 양지 바른 곳에서...
시원한 바람과 고슬한 가을볕에 고추며...감이며...토란대며...오색빛깔로 늘어놓고 정갈하게 말려
차분한 하얀 한지에 곱게 싸서...정다운 사람에게 부쳐주러..우체국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야 어울리지 않을까요?....

가을 볕에 내다 널고 싶은 그 꿈을 접지 못 해...안타깝다가...
보우무 덕분에 무말을 원도 없이 말려서 그 꿈을 대체해서 이루지요.
길게..가늘게...김밥용...잡채용...전통무말랭이...별별스럽게 다 말린 중에도

동그란 무말랭이가 단연 최고였습니다. 동그랗게 말릴 생각을 어찌 했을까...
먹을 때 마다 제가 대견?스럽습니다.

동그란 무말은 섬유질을 수직으로 끊어서 썰어지니까 훨씬 먹기 좋습니다.
<쫄깃거리나 질기지 않다> 라는 기준에 높은 점수로 합격?이지요.

보우된장동부잎이 깻잎보다 두꺼워서... 먹기는 더 편하군요. 만지기도 더 수월하구요.
그냥 통에서 꺼낸 그대로 먹으니 자연식점수 최고입니다.

동그란 무말을 각종 장아찌에 사이사이 넣어두면 장아찌 짠맛도 감해지고 무말도 맛있기에
여기저기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보니 동그란 무말부터 없어지더군요.
동그란 무말이 남았으면 동부잎 사이사이에 넣어두면 좋았을 텐데...
올해는 모두 동그란 무말로만 말릴까합니다. 가늘게 먹으려면 썰면 되니까요

동부잎 옆에 있는 무말은 마늘쫑고추장 장아찌에 넣어둔 건데... 맛이 기찹니다.

어제, 오늘.. 금방 한 뜨거운 밥에 저 두가지하고만 먹었는데...
그 개운함이라니... 처음 먹어보는 동부잎이 주는 새로운 그 맛... 아무 양념없이...
역시 보우된장의 진가와 함께 씹히는 그 콩잎의 후덕하고 무던함...너무 좋군요.

보우무가 나올 날들이 기다려집니다. 그 순백의 깨끗함...
말려 놓으면 조선의 광목색이 나는 그 방정맞지 않은 흰색... 조선백자 같은색...

가을볕 멍석위에...빨간 고추...녹색고추꼬투리... 노란좁쌀..그 옆에 갈색들깨..
이보다 더 멋있는 색의 그림은 없을 겁니다...

요새는 볼수 없어...머리 속에서만 펼쳐집니다...

가을엔...말립시다...욕심도...끈끈한 후회도...미움도...게으름도...
모두 햇볕에 내다 널면... 그 빈자리에...맑은 가을하늘이 들어오지 않을까요?

<고맙습니다>



* 최동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1-22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