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탓인가요,아님 계절 탓인가요, 마음 한 켠이 좀 시리네요.
전 오늘 제 옆을 오래 지켜준 물건과 헤어졌답니다.
제가 1986년 11월에 결혼 했으니 열일곱해하고도 십개월을 더 늘 제 곁에 있던 물건이네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제가 결혼 할 땐 지금보다도 저의 친정경제가 아주 힘들 때 였답니다.
위로 딸 여섯에 막둥이로 남동생 하나 있는 집의 장녀가 바로 저랍니다.
애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하시기에 저의 친정부모님 허리 펴실날 없으셨죠.
게다가 친정아버님은 약주를 좋아 하시다 보니 허구 헌날 병원신세를 지시고, 친정엄만 예나 지금이나 환자에겐 극진하시죠.
아마도 저의 친정 아버님 다른 분과 결혼 하셨다면 벌써 돌아가셨을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간호사인 엄마를 만나셔서 지금은 겉보기엔 오히려 친정아버님께서 더 건강해보이신답니다.
하긴 두 분의 인연이 환자와 간호사로 만나셨으니....
나중에 알고 보니 우습게도 그 간호사가 아버님의 은사님 따님이더라네요
저의 외할아버님께선 그 옛날 경성사범을 나오셔서 모 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셨고 저의 부모님은 무려 열 다섯의
나이차이가 나니 갓난 아기때 보았던 아기와 결혼한 셈이죠.
두 분이 만나실 당시엔 친정아버님은 경찰공무원(옛날 순사)이셨는데 아는 분 사정 봐 주시다가좀 이른 나이에 실직을 하시게
되었고 결국 그 무거운 짐을 친정엄마가 모~두 지신 셈이죠.
참 많이도 힘들게 사셨는데 맏딸이 시집을 간다니 맘이 많이도 쓰이셨겠죠.
전 염치가 없어서 장농도 짐 들여오는날 처음 봤을정도로 그냥 해 주시는대로 시집을 왔어요.
요즘 사람들 결혼 할 때 보면 이것 저것 많이도 해가고 큰 것도 해 가던데...
결혼할 때 엄마께선 여덟자짜리 장농에,17인치TV, 150리턴가 180리턴가 냉장고,2구짜리 린나이 가스렌지, 약간의 그릇을 장만해 주셨지요.(최선을 다하셔서)
지금은 TV와 냉장고는 바뀌었고, 나머지는 아끼고 아끼면서 잘 쓰는데 오늘 가스렌지와 헤어졌네요.
지금 집으로 이사올 때 동생들이 붙박이 장으로 바꿔준다고 하는 것도 한사코 마다하고 오븐렌지로 바꿔준다는 것 마다하고
잘 버텨 왔는데 ....오늘 헌 가스렌지를 고철 재활용하는 곳에 내려다 놓으려니 꼭 친정엄마의 살점을 떼어 버리는 것 같은
맘이 들어서 허전하답니다.
제가 집에만 있었다면 그냥 썼을텐데 한 쪽 점화하는 손잡이가 삭아서 떨어져 나가 반대쪽 손잡이를 빼다가 케익살 때 주는 초로
불붙여 가면서 쓰는데 우리 아들녀석이 가끔씩 가스렌지 사용 하기에 불안해서 바꿨네요.
우리 남편 맨날 나더러 궁상 떤다고, 뭐라 하는데 사실 전 힘들게 혼수마련해서 보내주신 엄마의 정성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서...
남보기에 궁상으로 보이는 짓을 하면서 산답니다.ㅋㅋㅋ
사실 오늘 바꾼 가스렌지 새것 아니거든요. 2년전에 아는 사람이 오븐렌지로 바꾸면서 우리집 가스렌지보다 나으니까 바꾸라고 준것이었어요.
그걸 여태 가지고 있다가 오늘 바꾼거예요.
남숙언니 저 잘하고 있는 거죠?
궁상맞아 보여도 그냥 잘한다고 칭찬해 주세요.(반강제,협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