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전 뜻하지 않은일로 일본에 갈일이 생겼다.
당시 일본에서 신문배달, 우유배달등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남동생이 교통사로로
의식불명이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한 사람은 동생과 친분이 많은것은 아니지만
같은 유학생의 입장에서 전화를 해준것이다.
장남이 의식불명이라는 전화 한통화에 엄마는 혼절한 지경이었고
내가 대표로 일본에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부랴부랴 급행으로 여권을 만들었으나 비자는 까다로왔다.
그당시 여자가 일본에 취업하러 많이 가는 까닭에 비자 만들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대사관까지 쫓아가서 호소문까지 만들어 비자를 얻기까지
총 3일이 걸렸고, 그날로 비행기타고 일본으로 날아갔던 것이다.

3일만에 도착하여 병원에 가보니 다행히도 의식이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아래턱뼈가 부서져서 고정시켜 놓았으니 음식은 먹을수가 없었고
호수로 우유를 받아먹고 있는 실정이었다.
우유배달도중 교차로에서 트럭하고 정면충돌하여 11미터를 날랐다나?
살아난게 기적이라고 하였다.
오른쪽 발목에도 금이 가서 수술을 해야할것 같았다.

남존여비 사상이 두드러지게 강했던 집안에서 자랐던터라
장남인 남동생과 세째딸인 내가 대조적인 대우를 받았는데
그때문에 나는 남동생에게 별로 애정이 가질 않았다.
나이도 한살차이라 학교도 같이 다녔지만
남동생은 한번도 나보다 공부를 앞선적이 없었다.

다음날 수술을 마친 동생이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침대에 실려 들어왔다.
소변보는 호수줄이 끼여져 있는데도 오줌마렵다고 소리를 지른다.
생전 처음으로 동생손을 꼬옥 잡고 오줌누어도 된다고 말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한가보다.
병실에는 일본 노인환자들이 많았는데 보호자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것 같았다.
일본은 병원시설도 잘되어있고 간호사들이 친절하여 보호자 없이도 가능한가보다.

오후에 의사가 보호자를 부른다고 하였다.
갔더니 동생의 엑스레이 촬영사진을 걸어놓고 막대기로 가리키며 나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한 15분정도 설명을 들었는데,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보호자에게
정성을 다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일본의 안경낀 의사를 바라보자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은 점점 좋아졌다.
만화를 유독 좋아하는지라 동전을 주면서 \"점프\"라는 만화책을 사다 달라고 하였다.
병원과 동생이 살던 자취방과는 전철역으로 두정거장이다.
매일 병원에 출퇴근 하느라 전철을 타게 되었는데
안내방송을 하는 목소리가 배한성 뺨치게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이다.
우리나라처럼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와는 너무 대조적인.
지금도 \"와라비..와라비데스..\"라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잊을수가 없다.

동생의 자취방은 원룸식으로 방하나에 침대가 있고 부엌겸 거실이 손바닥만하고
욕실이 있었는데, 처음에 방에 들어온순간 남자 혼자서 생활하던 흔적들을 보면서
마음이 어찌나 싸~아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결혼하여 살고있는 일본인 올케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발수술이 끝났으니 턱교정을 하기위해 큰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소방관들이 와서 이동을 하나보다.
잠시후 도착한 떡대좋은 소방관들이 동생의 침대를 소방차로 들어올리고
보호자도 타라고 하였다.
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출발하자
앞에 하나 가득 도로를 점유하고 있던 차들이
진도 앞바다 갈라지듯이 비켜주었다.
한국의 얌체같은 운전자들하고 참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병원 근방에 커다란 백화점이 있어 자주 갔었는데
커다란 사각으로 된 통에 밥을 해서 팔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잡곡밥과 백미를 일회용 그릇에 파는게 신기했다.
백화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덩치큰 흑인남자가 나를 보더니
뷰티플, 뷰티플 하면서 과장된 제스처로 웃으면서 다가왔다.
급히 오느라 집에서 입던옷에 긴머리는 다듬지도않고 질끈 묶었고
화장끼 하나없는 푸석한 얼굴이 뭐가 아름답다고 뻥을 쳤을까.
일본은 큰 백화점이건 작은 마트이건 사라다 종류가 아주 많았다.
사라다를 좋아했던 나는 갖가지 종류의 사라다를 다 맛보았는데 밥대신 사라다를 먹을정도로 맛있엇다.

비자기간 만료일인 14일만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회복이 빨라 밥도 잘먹는걸 보게 되어 다행이었다.
동생이 근무하던 니혼게이자이 신문사 직원이 주변 관광도 시켜주고
나리따 공항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요시가와 라는 그 일본인은 동생이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사고 담당으로 있으면서 얼마나 무심한지 보상금을 거의 받지를 못했다.
지금은 건강한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히 여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