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렌과 함께......)



방콕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경이었다.
시차 때문에 손목시계를 열심히 돌려야 했다.
심사대를 빠져 나오자마자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저렴하고도 괜찮은 방을 소개해 달라고 하여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갔다.
호텔은 깨끗하고 넓었고 객실도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다.
배가 고프니 밥부터 먹기로 하고 근처의 식당엘 갔다.
국수처럼 생긴 음식이 보이길래 들어가서 먹어보니 담담한 맛이 그런대로 먹을만 하였다.
그것만 두그릇 먹고 들어왔다.
비행기안에서 시달려서 그런지 머리가 많이 무거웠다.
내가 여름이면 에어콘때문에 겨울이면 히터때문에 고생을 한다.
두개 다 나의 두통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기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지만 실내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는 무척 고통스럽다.
담배 연기 맡고서 구토하는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누워서 미덕이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기분이 훨씬 가벼워 졌다.
호텔 종업원이 오더니 전단지 같은걸 한장 주고간다.
아마 태국 관광을 할 여행객들을 유치해오면 커미션을 받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내일 출국할 예정이라고 말해주었다.
가뿐해진 마음으로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밤거리를 나갔다.
조금 더 큰 규모의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레스토랑안에는 우리 말고도 손님이 군데 군데 있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화려한 음식들을 시켰는데 대부분 느끼했다.
한참 음식을 먹고 있는데 라이브 무대가 열리는지 기타와 드럼등이 무대에 올려졌다.
기타를 맨 리드싱어까지 4명의 남자가 무대에서 노래할 준비를 한다.
우리는 밥먹으러 왔다가 이게 웬떡이냐 싶어 음악 끝날때까지 있자고 했다.

처음 몇곡은 태국음악인지 잘 모르는 노래를 부르는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귀에 익은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 전주곡이 흘러나왔다.
으아..내가 좋아하는 이글스의 노래를 태국에 와서 라이브로 듣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호텔 캘리포니아에 취해서 밤무대 가수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주 예쁘장하게 생겼다.
꼬불거리는 파마머리를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무릎이 찢어진 꽉끼는 청바지에 체크무늬 남방이 잘 어울렸다.
이국에서 듣는 라이브는 확실히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나는 밤무대가수의 열창하는 얼굴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이 음악이 이렇게 가슴을 황홀하게 만들줄이야!

음악이 끝나자 나와 미덕이는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힘찬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데 밤무대 가수가 인사말을 하더니 마지막엔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는것이 아닌가…
밤무대 가수는 우리가 한국인인것을 알고 한국말로 답변을 했던 것이다.
노래가 끝난 밤무대 가수가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왔다.
이런 영광이….
나는 얼른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우리가 마시고 있던 맥주병을 들어서 한잔 권했다.
드럼과 작은북을 치던 다른 멤버들도 우리 테이블에 와서 앉는다.

잠시후 밤무대가수가 위스키를 사겠다고 한다.
밤이라서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황홀한 눈빛을 보낸죄로다 가기로 하였다.
뒤에 많은 악기들을 실고 다니는 밴종류의 자가용 이었다.
자가용을 타고 밤거리를 씽씽 달려 동물원을 지나 시내 한복판에 차를 세웠다.
안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이렇게 큰 나이트클럽엔 한국에서도 간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좌석마다 빼곡이 들어찬 수많은 사람들.
태국사람들은 스테이지에 나가서 추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춤을 춘다.

나는 술을 못하므로 잔만 받아놓고 앉았다.
친구들과 미리 선약이 있었던듯 여러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에 합석을 하였다.
여자, 남자 그리고 나이가 든사람이건 어린 사람이건 모두 자리에 서서 흥겹게 춤을 추었다.
젊은 여자들은 배꼽이 드러나는 섹쉬한 옷차림에 주로 미니스커트를 많이 입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 가야겠다고 하고 일어서니 밤무대가수가 바래다 준다고 함께 나섰다.
숙소앞까지 우리를 내려주었고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들어가려는데 크락숀소리가 들렸다.
급히 뛰어가보니 밤무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May I go your room?\"
순간 밤무대가수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냥 갈것이지..
매몰차게 거절을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떠났다.
하지만 지금도 호텔캘리포니아를 열창하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귓가에 아른거린다.

늦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일단 체크아웃부터 하고 배낭은 호텔에 맡겨놓았다.
비행기 출발이 밤 10시 이므로 태국에서 유명하다는 맛사지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어제 갔던 레스토랑 바로옆에 맛사지 하는곳이 있는것 같았다.
맛사지 하는곳에 들어가니 유리로 된 대형 진열장안에 젊은 아가씨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맛사지 받으러 왔다고 하니 방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나에게 온 여자는 노련한 아줌마인데 꽤나 많이 해본 솜씨였다.
미덕이에게 온 여자는 주근깨가 많이 난 젊은 여자인데 초보인지 무척이나 어설퍼 보인다.
미덕이는 맛사지를 받는 느낌이 별로 나질 않는다고 했다.
3시간정도 맛사지 받고 무척 시원했으나
좁은 방안에 누워 계속 틀어대는 에어콘바람이 별로 안좋았다.
하지만 힘들게 노동하는 그들에겐 에어컨 바람이 꼭 필요할 것이었다.
나를 맛사지한 여자는 이름이 \"야\"라고 했으며 17살때부터 이 일을 해왔다고 한다.
나중에 또 방콕에 오게 된다면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맛사지를 아주 잘했기 때문이다.

맛사지클럽을 나와 호텔에 가서 배낭을 찾고 슬슬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눈여겨 봐둔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공항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태국인들은 대부분이 영어를 못하는것 같았다.
몇번 버스가 공항가느냐고 묻는데 한 여섯명정도에게 물으니 겨우 한사람정도 대답을 한다.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공항내 구내 식당이 가격이 저렴한것 같아 그곳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어제 환전한 100달러 4,500바트가 동전 몇 개 남은걸 보니 알뜰하게 다 쓴모양이다.

시간이 되어 우리가 탈 비행기에 오르니 온통 한국사람 투성이다.
\"어..한국말이다!\"
미덕이와 나는 동시에 외쳐댔다.
한국말이 얼마나 생경스럽게 들렸는지 모른다.
한국신문도 보이고 스튜어디스도 한국인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한국에 돌아간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귓가에는 알아듣지 못할 외국말이 윙윙 대는데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우리는 무사히 여행을 마친것에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가슴 설레이며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