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야원입구의 문지기 아저씨와 함께


갓트에서 빠져나와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한참 걸어나오면
시내가 나온다.
시내 곳곳에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는것이 보인다.
인도 사람들은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예전에 쑤닐이 시간나면 영화를 보라고 했던말이 생각나서
영화관람을 하기로 하고 숙소 근방의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관 앞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는데
영화 매표소앞에 줄을 서있는 행렬이 끝이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줄을 안서도 된다는 여성들 조차 인원이 많으니
줄을 설수 밖에 없었다.
남자들 행렬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미덕이와 함께 줄을 섰더니 내앞에 인도여성들이 십여명 정도 있는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줄이 줄어드는 기미도 안보이고
성질급한 한국인인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시커멓고 젊어보이는 인도남자가 내옆으로 슬쩍 다가오더니
100루삐짜리 두장을 슬그머니 내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면서 손을 네개 펴보이는것이 영화표 4장을 부탁한다는 뜻인것 같았다.
얼떨결에 인도남자 영화표까지 떠맡은 나는 꼼짝없이 대열에 끼여 있어야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줄이 점점 줄어들었고
한두명만 표를 사면 내차례가 될것 같았는데
갑자기 경비 비슷한 사람이 나오더니 표가 매진되었다고 돌아가라고 손짓을 한다.
그러자 아우성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줄서서 기다린지가 몇시간짼데 영화도 못보고 돌아가게 생겼으니
그럴법도 하다.
표가 매진되었다는 소리에 나에게 돈을 맡긴 젊은 남자가
비호같이 내앞에 나타나 나는 다시 돈을 돌려주었다.

표가 없다는데도 인도남자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영화관 문입구에서 철창을 잡고, 난리를 치는데
마치 영화에 목숨건 사람들 같았다.
우리야 안보면 그만이지만, 그 사람들 난동피는게 더 구경거리였다.
영화 간판도 보니까 그저그런 멜로드라마 같드만
뭔 영화를 그리도 좋아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우성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우리는 숙소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TV를 트니 어느 채널에서건 거의 춤과 노래가 나온다.
인도춤은 아주 경쾌하고 발랄하다.
음악의 색깔도 거의 비슷해서 탁 들으면 인도음악인지 대번에 알수 있을정도이다.
남자와 여자가 쌍을 이루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데
다양하지 않고 거의 모든 노래와 춤이 비슷한데도
인도사람들은 그래도 그런 음악과 춤이 아주 좋은가보다.
드라마는 아주 가끔씩 본 기억이 나는데
주로 멜로드라마가 많은것 같았다.

밤기차를 타야하니 서둘러서 준비를 하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바라나시 기차역은 아주 방대했다.
화장실을 가기위해 찾았지만 도무지 어느구석에 박혀있는지 눈에 띄질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다 틀리게 대답을 해주니 도리가 없었다.
미덕이가 뭘 잘못 먹었는지 설사가 나온다고 하여
얼마나 화장실을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
나중엔 가게에 가서 과일좀 사고 화장실좀 빌리자고 부탁을 하기로하고
과일가게에 갔다.
일단 바나나 한뭉치를 사고, 화장실 얘기를 꺼내니
주인은 화장실이 없으니 기차역내의 화장실을 이용하란다.
김이 팍 새어 버렸다.
다시 기차역에 돌아와, 샅샅이 뒤져서 드디어 찾아 내었다.
한시간이 넘도록 화장실을 참느라 미덕이는 엄청 힘들었을 것이다.

바나나를 사들고 기차표에 적힌대로 3번홈을 찾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안내방송이 들린다.
우리가 타려는 기차이름이 \"쵸리촐라\"인데
그 기차가 1번홈으로 바뀌어서 들어올 것이란다.
부랴부랴 배낭을 이고 다시 1번홈을 찾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안내방송을 제대로 들은건지 불안하여
다시 매표소에 가서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물어보았다.
몇번 홈에서 기다려야 하냐니까, 그 직원은 다시 방송이 나올꺼란다.

하는수 없이 1번홈에 기다리며, 똑똑해 보이는 인도인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그사람도 헷갈리는지 1번이 맞다하고, 옆에 있던 다른 인도인은 3번이 맞다하고…
홈은 10개가 넘어보였다.
아마도 인도기차는 시간도 안지키지만, 홈도 저 오고 싶은길로 오는가보다.
기차가 올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올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모기는 사방에서 피부가 하얀 우리들에게만 들러붙는지
온몸을 모기에게 잔뜩 보시하고 있었다.

모기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자
젊은 인도남자 한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눈에도 아주 잘생긴 사람이었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쵸리촐라 기차가 1번홈에 오는게 맞느냐고 하니까
그사람은 확실하게 맞는다고 한다.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어디까지 가느냐며 이것저것 많은것을 물어왔다.
대화도중 호탕한 웃음을 자주 지었고
사람이 나빠 보이질 않았다.

나이는 31세이고 람바라고 했다.
람바는 카투만두에 집이 있고, 인도에는 사업차 자주 왔다갔다 한단다.
람바와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자
늦어지는 기차를 기다리며 심심해 했던 인도인들이 삽시간에 우리주위를 에워쌌다.
람바도 그렇지만 인도남자들 눈은 왕방울 만했고
그 왕방울만한 눈으로 우리를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본다.

제 시간보다 두어시간 늦게 들어온 쵸리촐라는 기세좋게 한밤중에
바라나시에 정차를 했다.
우리는 표를 들고 좌석을 찾아서 피곤한 몸을 누이기로 했다.
제시간에 오지 않는 기차 기다리는 일은 무척 힘든일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외국인은 우리셋뿐,
시커멓고 눈이 큰 인도인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캄캄한 밤이라 창밖에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었고
대충 고락뿌르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서 알람 시계를 맞추어놓고 잠을 잤다.
아침 7시까지는 푹 잘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