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 반계 석정

"매화가 앞 다투어 피듯 매창을 만나고…"
박방영 작가의 그림으로 떠나는 부안여행1

유가(遊家) 친구들과 서울에서 차를 타고 부안(扶安)으로 신나게 달려 부안읍 성황사의 아침 공기와 고요한 절을 둘러보고 탑 앞에서 잠깐 두 손을 모았다. 성황산 중턱 서림공원에 있는 매창시비를 보고 내려와 석정문학관에서 석정시인의 삶과 시에 대해서 배우고 보았다. 우리 마음에는 이미 매화가 피어났다. 매창묘에 가보니 매창이 비둘기가 되어 찬 공기와 휘도는 3월의 바람을 운기(運氣) 있게 만들고… 우리는 버들과 매화가 앞 다투어 피듯 매창을 만나고… 매창의 시 ‘자한(自恨)’을 큰 모필(毛筆)로 퍼포먼스 할 때 아직 겨울을 이기지 못한 갓 넘은 경칩이 하늘에서 대지로 오지 않은 봄꽃을 재촉했다.

개암사에서는 400년이 된 아직 피지 않은 매화나무를 칭송하고 능가산 울금바위의 역사와 전설을 기억했다. 해진 저녁 해맞이 펜션에서 우리의 정을 술과 노래로 다지며 노랑 달 위에 탄 듯 기분 째졌어라. 구름이 지나는 밤을 지새우고 옛적 허균이 묵었다던 작은 암자가 있었던 자리를 찾아가는 길에 진달래꽃 한 잎 우리를 맞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피어나고 있었다.


▲반계 실사구시

그 길의 대숲길! 아, 맑고 청아한 대나무 살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팻말이 반계 유형원을 생각하며 구도(求道)하는 어느 꽁시의 마음이 느껴지게 하고,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대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손에 들고 어린 웃음을 흘리며 모두들 부안에 한사발의 정을 떨구어 놓았다.


▲산 너머 내 고향

나의 고향

어린 시절 내 고향을 추억해서 그린 그림이다. 산 넘어 산속에 있고 산위에 성황사가 보이는 곳, 산위 소나무와 정자는 먼 미래를 끌어오게 한다. 정자에 앉고 선 사람들이 시를 머금은 표정으로 풍경을 바라보고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곳, 내 인생(人生)의 밑바탕을 만들어 주던 핑크빛 정이 묻힌 곳이다.

부안군 행안면 역리 옥여동이 주소다. 자율학습이 늦게 끝나서 어둠의 산길을 넘어 다녔던 어린 시절 그곳에서 밤의 두려움을 넘기고 친구들과 연날리기, 숨바꼭질, 얼음지치기, 산속전쟁놀이, 자치기, 팽이치기, 못치기, 썰매만들기, 대나무 스키타기 등 내 장난기와 흥을 쌓게 한 곳. 해안 지방이라 초빈(무덤을 만들기 전 바람에 살이 썩고 없어지면 뼈만 무덤에 묻는 풍장, 장례 문화의 일종)이 있었고 뼈들이 흩어져있었다. 뼈를 주워 자치기 했었던 아련한 기억의 창고 나의 고향.


▲당산마루 밥상

부안은 맛의 고장이다

전주가 맛의 고장이라고 하는 것은 전주 인근 산해진미가 전주로 모이기 때문이다. 부안은 넓은 들과 깊은 산, 바다가 있는 곳이어서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맛이 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특별한 음식을 만드시면 옆의 두서너 집에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음식을 받은 집의 아주머니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젓가락을 들고 나오셔 먼저 맛을 보고 품평을 하시면 나는 어머니께 그 말씀을 전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래서 더욱 맛을 서로 잘 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미식가가 된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부안군청 옆 당산마루에 가면 예로부터 내려오던 품격 있는 부안음식이 나온다. 상이 비좁을 만큼 산, 들, 바다에서 나온 음식들이 입맛을 돋우며 포식하게 만든다. 당산마루 뿐만 아니라 부안의 백합죽, 바지락죽은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일품이다.

부안 내변산 입구에 죽염 된장을 대량으로 파는 곳이 있다. 주위의 서울 친구들이 사먹고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 그 사장은 자연의 맛을 내기 위해 성심을 다한다. 나도 부안에 가면 언제나 된장을 사오곤 한다. 부안에 2~3일 머무르며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서울에 오면 2~3일은 밥맛이 없을 정도다. 그 정도로 부안은 자연적이면서 맛이 좋은 맛의 고장이다.

/박방영(작가)

<부안이야기 12호>에서 옮겨왔습니다.

(부안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