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6-03-13 (14:54)
[위도의 풍어제-4] 위도 식도리 당제
글쓴이 : 권정숙 조회 : 1907

 

당집에 오르고 있다/당집은 까마귀산 서쪽 중턱 식도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부안21

가정의 안녕과 복을 비는 ‘꽃반’
[위도의 풍어제-4] 위도 식도리 당제

 

본섬(위도)과 마주보고 있는 식도(食島)의 원래 이름은 ‘밥섬’으로 위도의 지형이나 풍수설에 의해 고슴도치 머리(아가리) 앞에 놓인 ‘고슴도치의 밥’에 해당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섬에서 가장 높은 까마귀산(烏山, 까막산, 해발 116m) 아래 섬 가운데가 잘록하게 안으로 파고들어 그 지형이 마치 솥을 걸어놓고 밥을 짓는 형국이라 밥섬이라 부른다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선너매와 뱀목을 병합하여 식도리라 하였다. 섬 남쪽의 해안을 따라 취락이 이루어졌는데 지금의 선착장(방파제)을 중심으로 동쪽이 중선너매마을로 우체국과 여객선터미널이 있으며, 서쪽이 마을 경로당과 위도초등학교 식도분교가 있는 식도마을이다.

식도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아 물때와 관계없이 배들이 드나들 수 있어 위도가 조기어장으로 성시를 이루던 시절에는 전국의 조기잡이 배들이 이곳으로도 몰려들어 중선너매에는 파시가 들어섰었다. 한때 학생 수 120명이 넘던 위도초등학교 식도분교는 2013년 2월 현재 6명이 수업을 받는 초 미니학교로 변해 있다. 성대하게 치러졌던 당제도 지금은 많이 간략해졌다.

식도리 당제 역시 매우 엄격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마을이 부정을 탄다고 해 음력 섣달에는 아기를 못 낳게 했다. 그래서 출산을 앞둔 여자들은 마을 넘어 섬 한쪽에 있는 외딴집으로 보내 살다 오게 했다. 가족들마저도 아기가 태어났는지를 모르고 있다가 당제를 지낸 다음 날에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마을에는 그곳에서 태어난 몇 분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

이날 마을사람들 모두는 하루 일을 쉬고 행동을 조심한다. 제관(요즈음에는 이장이 제관을 맡아 한다.)은 아침 일찍 마을 뒤편에 있는 당산나무에 제물을 차리고 간단하게 제를 올리는 것으로 당제를 시작한다. 오전 9~10시경 당에 오를 일행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맨 앞에 징잽이, 화장(祭主), 그 뒤에 무녀, 풍물패, 뱃기 순으로 당에 오른다. 이때 무녀 외에 여자는 당에 오를 수 없다. 여자 화주는 마을회관에서 제물 준비만 한다. 선주들이 뱃기를 들고 당에 오르려 해도 부정을 탈까봐 2~3기로 제한한 것이다.









▲당에 도착하면 풍물패는 굿을 치며 당집을 돌아 일행의 도착을 당신에게 알리고, 제관은 당집 안과 앞마당, 그리고 뒷마당에 제물을 진설한다. 당집 앞마당은 잡신, 뒷마당은 산신을 위한 제물이다. 제물 진설을 마칠 무렵에는 당집 앞마당 오른편 구석에 모닥불을 피워 연기로 당집 주변을 정화(액귀를 쫒는다)한다.ⓒ부안21

당집은 까마귀산 서쪽 중턱 식도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돌담으로 빙 둘러져 있고, 주변에는 소사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느끼게 한다. 당집 안에는 본당서낭, 장군서낭, 원당서낭, 애기서낭 등 네 신위가 모셔져 있다. 당에 도착하면 풍물패는 굿을 치며 당집을 돌아 일행의 도착을 당신에게 알리고, 제관은 당집 안과 앞마당, 그리고 뒷마당에 제물을 진설한다. 당집 앞마당은 잡신, 뒷마당은 산신을 위한 제물이다. 제물 진설을 마칠 무렵에는 당집 앞마당 오른편 구석에 모닥불을 피워 연기로 당집 주변을 정화(액귀를 쫒는다)한다.

제물 진설을 마치면 무녀의 당굿이 시작된다. 당굿을 하는 도중에 ‘산맞추기’로 선주들이 한 해 동안 모실 배서낭을 내림받는다. 산맞추기는 산쌀을 집어 짝수가 나오면 장군서낭을 받는 것이고, 홀수가 나오면 다른 서낭의 이름을 대면서 짝수가 될 때까지 산을 맞춘다. 그런 다음 배 이름을 적은 한지에 산쌀을 넣고 접어서 ‘깃손’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깃손은 깃손함에 담아서 마을로 내려와 선주들에게 나눠준다.

당굿이 끝나면 당집 앞마당에 진설했던 돼지머리는 당집 앞에 묻고, 나머지 제물은 모두 큰 자루에 담아 들고 바닷가 용바위로 내려가서 바다에 던지는 ‘산물’을 한다. 이는 용왕에게 밥을 먹이는 의식으로 그 다음날 용왕밥이 담긴 자루를 확인해 가라앉아 보이지 않으면 마을에 길조가 든다고 한다.

마을로 돌아 온 화장 두 명은 제주가 되어 도제를 지낸다. 도제는 마을 북서쪽 바닷가에 있는 도제바위에서 지내는데, 이곳에 장막을 치고 백지를 깔아 그 위에 제물을 진설한다. 메는 미리 씻어온 쌀을 솥 세 개에 나누어 짓는데 완전히 익히지 않고 어느 정도 끓으면 백지에 싸서 세 덩어리를 만든다. 도제를 지내는 동안 제주 두 명은 마스크를 쓰고 일체 말을 하지 않으며 의사 표시는 손짓으로 한다. 도제가 끝나면 백지에 싼 메 세 덩어리를 동·서·남을 향해 던지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빈다.

그 사이 마을사람들은 동네 한가운데에 굿청을 차리고 ‘도청굿’을 준비한다. 도청굿은 마을을 위해 수고한 역대 이장들의 넋을 기리는 굿으로 제물을 진설할 때 메는 죽은 이장의 수대로 하는데 보통 20~25그릇을 차린다. 이때 깨끗한(손 없는) 집에서는 쌀 한 되와 술, 돈을 놓은 상을 가지고 나와 자기 가정의 안녕과 복을 빈다. 이를 ‘꽃반’이라고 한다.

도청굿이 끝나면 제물을 모두 거두어 앞장불 해안을 돌며 뿌린다. 수중고혼과 마을 주변의 잡신을 먹여서 액을 막고 어장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산물을 마치고 일행이 마을로 돌아오면 마을회관 앞에서 한바탕 굿판을 벌인다.

식도리당제는 이처럼 마을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마을신과 바다의 용왕에게 정성들여 올리는 큰 마을제사로 인근 마을 대리나 진리와 같은 양상을 띠나, 마을을 위하여 많은 봉사를 하고 죽은 역대 이장들을 위한 제사(도청굿 또는 마을굿)도 함께 지내는 것은 이 마을만의 특이한 점이다.

<끝>

/허철희huh@buan21.com

<부안이야기 13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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